고려, 12세기 높이 35cm 몸체지름 21.5cm
2004년2월26일 제85회 서울옥션경매 추정가 1억2천만~1억5천만원
고려시대의 청자는 전래품(傳來品)이 거의 없습니다. 전래품이란 누군가의 손을 거치면서 계속해 세상에 전해진 것을 말합니다.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조선의 개국 직후에는 더러 청자를 사용했겠지만 이내 백자의 시대가 열리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볼 수 있는 고려청자는 모두 출토품입니다. 제아무리 명품이라도 대개 무덤, 궁궐터, 절터 등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또 출토품인 까닭에 나름의 흠이 있습니다.
땅 속에 오래 파묻혀 있으면 땅이 반복해서 얼고 녹으면 자연히 그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유약으로 코팅이 되어 있다고 해도 빙렬(氷裂)이라고 해서 미세하게 갈라진 틈이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 속으로 물기가 스며들어가 그것이 얼었다가 녹았다가 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또 땅 속에 있는 산에 닿아 부식되는 일도 흔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굴이든 발굴이든 출토 과정에서 부딪치거나 닿아 파손이 생기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특히 도굴 때에는 긴 꼬챙이(예전에는 총기류의 총열을 닦는데 쓰는 꽂을대를 이어 썼다고 합니다)로 무덤 근처 땅을 쑥쑥 찔러서 물건이 매장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게 보통입니다. 청자에 눈알사탕만한 구멍이 뚫린 것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이 매병은 고맙다고 할 정도로 거의 완벽합니다. 몸통 전체에 연당초문을 새겼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음각선으로 문양을 판 것이 아니라 문양의 윤곽 주변을 넓게 파서 문양을 도드라져 보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당초나 연잎 속의 잎맥은 음각으로 선을 그었습니다.
청자음각 연당초문 매병, 12세기 높이 43.9cm 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7호
그래서 얕은 부조 같은 느낌을 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기법에 대해 음각이냐 반양각이냐 하는 논란이 있었습니다.(지금은 반양각이란 말보다 음각으로 통일해 쓰는 편입니다)
당당한 어깨에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문양 그리고 비취색 색상은 일급입니다. 이런 분위기와 기품을 지닌 것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청자음각 연당초문 매병이 있습니다. 또 매병은 아니지만 문양과 기법이 유사한 것으로 삼성미술관리움 소장의 연당초문 항아리도 있습니다.
청자반양각 연당초문 호, 12세기 높이24.4cm 삼성미술관리움 보물 1028호
이들은 모두 완벽한 외형을 자랑합니다. 청자가 이렇게 완전하면 뜻하지 않은 소동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30년전 인사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이와 비슷한 크기의 완벽한 매병 하나를 놓고 상인들 사이에 ‘진짜네, 가짜네’ 하고 서로 싸움이 벌인 적 있었습니다. 물건 주인은 남한산성 부근에 사는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난처하게 됐는데 실은 소장자가 아니라 형의 부탁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형은 전남 완도에서 크레인 운전사였습니다. 어느 날 분묘 이장 일을 해주던 중 이 매병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울 가까이에 사는 동생에게 부탁해 팔려고 보냈는데 사단이 난 것입니다. 일부의 얘기는 상태가 너무 좋아 틀림없이 일제 때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청자는 매우 귀했습니다. 귀했던 만큼 좋은 것이 드물었습니다. 당시 안목 좋은 상인이 이것이 진품임을 알아보고 사서 큰 재미를 보았다는 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