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상감 매죽조문 매병 부분(앞), 고려 13세기, 높이 34cm
대나무로 둘러싸인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이 새는 어떤 새일까요. 배와 뺨이 희고 꽁지가 긴 것이 박새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얀 눈 주위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튼 고려시대 강진의 대구면 일대에는 이런 새가 자주 보였나 봅니다.
눈에 자주 보인다고 모두 그림으로 그려지거나 문양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솜씨와 기술이 뒤따라야 합니다. 고려청자가 세계적이라고 하는 말은 비색(翡色)외에 상감 기법을 구사했기 때문입니다.
상감은 어떤 물건에 다른 재료를 파 넣어 문양을 나타내는 기법을 말합니다. 이 기법은 고대 청동기 제작 때부터 있었습니다. 이 고색창연한 기법을 도자기에 적용시킨 것은 고려뿐입니다. 중국 도자기는 제아무리 문양이 현란하고 화려해도 모두 물감으로 그린 것입니다. 구우면 검은 색, 흰색으로 보이는 흙을 넣어 장식을 한 것은 고려청자가 최초입니다.(이후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상감 기법이 더러 보입니다)
청자상감 매죽조문 매병 부분(뒤), 고려 13세기, 높이 34cm
상감기법을 손에 넣을 때까지 숱한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입니다. 진흙을 빚어 청자를 만드는 동안 크기가 많이 줄어듭니다. 진흙으로 형태를 만들어 가마에 넣기 전에 잘 말려야 하는데 이때 5% 이상 부피가 줄어듭니다. 물기가 빠져 나간 것이지요. 그리고 또 초벌, 재벌 하면서도 크게 줍니다. 전체적으로 30% 가량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종류가 다른 흙을 상감으로 새겨 넣으면 흙의 수축률이 서로 달라 터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감 기법은 쉽게 구사하기 힘든 기법이 되는데 여기서는 마치 붓으로 그림 그리듯이 새와 나무를 새겨 놓았습니다. 매화나무의 제일 튼실해 보이는 가지 위에 발톱을 둥글게 말아 가지를 쥐고 있는 새 한 마리를 새겨 넣었습니다. 무슨 인기척을 느꼈는지 살짝 고개를 뒤로 돌리는 동적(動的)인 포즈가 일품입니다.
청자삼강 화조문 도판陶板, 고려 12-13세기 27.7x36.5cm 송암(松岩) 문화재단
청자상감 매죽조문 도판, 고려 12-13세기, 길이 27.3cm 국립중앙박물관
수많은 고려청자 중에 새가 상감된 사례는 극히 적습니다. 도판(陶板)에 새를 상감으로 새긴 것은 2점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매병에 새와 대나무, 매화나무를 새긴 것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더군다나 병의 한쪽 새는 고개를 돌린 반면 다른 쪽 새는 앞쪽을 바라보아 마치 서로가 무슨 신호라도 주고받듯이 표현했습니다.
청자상감 매죽조문 매병, 고려 13세기, 높이 34cm
2004년12월17일 제92회 서울옥션 No.104 낙찰가 10억원
대나무와 매화를 나란히 그리는 것은 송나라 전통인 듯합니다. 당시 문인들은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 해서 소나무, 대나무, 매화를 짝으로 자주 그렸습니다. 청자 문양에 소나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려시대 귀족적 취향을 고려하자면 아무래도 가녀린 인상의 대나무나 매화 쪽을 선호한 것은 아닌가 여겨집니다.
참고로 매병 어깨에 백토를 넣어 상감한 문양은 여의두문(如意頭文)이라 하며 병 아래쪽의 연속무늬는 뇌문(雷文)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