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명품 도자기는 대부분 유명 공사립 박물관, 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숨은 고수들이 많이 있듯이 도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에 나와 상인들의 흥정의 대상으로 돌아다니고 있지만 그 중에는 보석이라 불러도 전혀 과하지 않을 명품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언젠가는 분명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 시리즈는 근래 옥션 하우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 가운데 일품, 명품을 엄선해 그에 한 발 앞서 감상해 보고자 하는 기획입니다.(선정과 해설에는 학계의 도자기전공 연구가와 고미술계에서 오래 활동해온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청자음각 연당초문 매병(靑磁陰刻蓮唐草文梅甁) 고려 12세기 높이 37.3cm
2010년12월14일 제118회 서울옥션미술품경매 No.269 유찰
도자기를 보는 방법은 여럿입니다. 하수와 고수는 같은 것을 보아도 달리 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색입니다. 고려청자는 푸르다고 하지만 실상은 천차만별입니다. 청자의 색을 다르게 만드는 조건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태토가 무엇인지, 어떤 나무를 태운 재를 유약으로 썼는지. 또 불의 온도는 어느 정도였는지 등등. 다 같이 푸르게 보이는 색이지만 그 속에는 에메랄드그린에서 푸른색을 띤 녹색까지 실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입니다.
그런 가운데 고수들이 최고로 치는 색이 비취옥에 가까운 색입니다. 이를 흔히 비색(翡色)이라고 합니다. 12세기 전반에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도 이 색에 감탄을 했습니다. 청자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이런 색은 보지 못했다고 비색청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매병의 비색은 맑고 푸르면서 은은합니다. 그리고 현실 저편 어딘가의 세상을 상징하는 듯한 신비감마저 띱니다. 국보 중에 이런 비색 청자는 유명한 국보94호 청자 참외모양 병(靑磁瓜形甁)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문양이 있는 것으로는 국보 97호 청자음각 연당초문 매병이 있습니다. 특히 이 두 매병은 비색의 느낌과 문양의 기법이 매우 유사합니다. 그래서 같은 도공에 의해 같은 가마에서 구워진 솜씨가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두 매병 모두 연당초문(蓮唐草文)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음각 기법은 아무 무늬도 없는 순(純)청자에 이어 개발된 기법입니다. 유약을 입히기 전에 뾰족한 것으로 문양을 새기고 유약을 바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당초 덩굴을 몸 전체에 새겼는데 그 끝의 한 쪽에는 연잎과 다른 한쪽에는 연꽃을 새겼습니다.
이 새김 선에 유약이 고이면서 문양이 나타난 것입니다. 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굵고 엷은 것이 있습니다. 또 약간 경사지게 파서 유약의 바림 효과로 도드라져 보이게 하는 효과까지 냈습니다. 일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색과 기법 외에 또 볼만한 것이 형태입니다. 이렇게 입구가 좁고 어께가 넓게 퍼지고 다시 아랫도리가 좁은 병의 형태를 가리켜 매병(梅甁)이라고 합니다. 매병은 당나라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송나라 이후에 크게 유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주둥이가 좁아 경병(經甁)이라고도 했으나 송부터는 매병으로 굳어졌습니다.
매병이라 부른 이유에 대해 훗날 청나라 학자는 작은 주둥이가 매화나무의 앙상한 가지나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나라 때부터 이미 술을 담아 마시는 주병(酒甁)으로 쓰였습니다. 신안해저에서 나온 유물 자료에 따르면 꿀과 같은 액체를 담는 데에도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태 감상은 이런 기형 설명 보다 오히려 선이 보여주는 비례 감각입니다. 이는 사실 모든 도자기 감상에 있어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어깨에서 몸체 아래로 흐르는 선이 감각의 대상입니다. 옆에서 보면 이 선은 당당한 느낌을 줍니다. 시대가 내려오면 이 선이 아래로 쳐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깨가 이처럼 훤칠하게 올라간 듬직한 감각은 12세기 청자매병에 보이는 특징의 하나로 손꼽힙니다.(*)
청자음각 연당초문 매병, 고려 12세기 높이 43.9cm 국립중앙박물관 국보9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