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가 최정절품이라고 높이 평가한 고려의 비색 청자는 중국의 그것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뛰어났을 것이다. 서긍이 이렇게 평가한 것은 그 자신이 학식과 견문이 넓고 서화에 능할 뿐만 아니라 높은 감식안의 소유자로 12세기전반 중국 문물에 이해가 깊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현장에서 본 여러 종류의 고려청자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월주 고비색(越州古秘色)’이나 ‘여주 신요기(汝州新窯器)’ 그리고 중국의 ‘정기 제도(定器制度)’ 등과 같은 심도 깊은 전문용어를 구사했다는 점에서 볼 때 청자에 관한 그의 높은 견문과 감식안에는 의심을 품을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림 8. <청자 음각봉황문 주자(靑磁陰刻鳳凰文注子)> 오대-북송초기 월주요 높이 18.5cm 오사카 동양도자미술관
그런데 고려인이 서긍에게 알려주었다는 ‘비색(翡色)’의 ‘비(翡)’자는 앞서 육구몽의 시 「비색월기」 가운데 한 구절인 ‘천봉취색’의 ‘翠’자와 관련성을 부정할 수 없다. ‘비(翡)’와 ‘취(翠)’는 녹색을 띠는 경옥인 비취옥(翡翠玉)을 가리키는 말이다. ‘취색(翠色)’을 이상으로 한 월주청자(그림 8)나 ‘비색(翡色)’을 이상으로 한 고려청자도 모두 목표는 옥(玉)과 같이 부드럽고 맑은 재질의 청자였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1)
고려의 대시인 이규보가 ‘영연벽옥광(瑩然碧玉光)’이나 ‘치옥작기리(緻玉作肌理)’라고 읊은 것처럼 옥의 특별한 질감과 비교된 청자의 아름다움을 설명한 대목을 보면 13세기 고려사회에서 옥과 청자의 전통적 친연성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2)
이렇게 볼 때 ‘비색(翡色)’과 비취옥과의 관련성은 분명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색’의 구체적 색상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긍이 『고려도경』에서 ‘준예출향(狻猊出香, 사자향로를 의미, 그림 9)은 역시 비색(翡色)인데, …. 여러 그릇 가운데 이것이 가장 정절하며, 나머지는 월주 고비색(越州古秘色)과 여주 신요기(汝州新窯器)와 대체로 유사하다’라는 내용을 검토해보면 비색의 실체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림 9. <청자 사자향료(靑磁獅子香爐)> 고려12세기 높이 26.5cm 개인소장
그는 사자 향로의 ‘비색(翡色)’이 회청색 바탕에 녹색을 띠는 오대말, 북송 초기의 월주 청자와 천청색(天靑色)이나, 청록색(靑綠色)으로 불리는 여주 신요기의 색상과 분명히 다르다는 점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그것들과 다른 고려의 비색(翡色)’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서긍이 보고 느낀 고려 비색의 구체적 색상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월주청자를 계승한 보편화된 일반적인 고려청자의 색상이나 새로운 여주 신요기 계통의 색상과 분명히 구분되는 ‘제3의 색’이란 사실만은 확인된 셈이다.3)
고려인이 서긍에게 알려준 ‘비색(翡色)’이라는 명칭의 청자는 최정절품이었다. 태평노인 역시 최정절품 청자를 ‘비색(秘色)’이라고 부른 중국의 관례에 따라 ‘고려비색(高麗秘色)’이라고 표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고려비색 천하제일(高麗翡色 天下第一)’과 같이 ‘비(秘)’자를 ‘비(翡)’자로 바꿔 불러도 의미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비색(秘色)’은 천하제일의 청자를 가리키는 중국적 표현이며, 서긍이 일깨워준 ‘비색(翡色)’이라는 말은 최정절품을 가리키는 고려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3) 순청자 절정기의 비색은 유층이 얇으며 비취옥 같은 녹색에 미세한 기포가 많은 실투성유(失透性釉)로 태토의 밝은 회색이 은은히 비쳐 보이는 상태를 가리킨다. 정양모, 「고려청자(高麗靑磁)」,『고려청자 명품특별전(高麗靑磁名品特別展)』(국립중앙박물관, 1989), p. 275, 『한국의 도자기』(서울: 문예출판사, 1991), p. 20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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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은 차에 관한 최초의 종합적 기록으로, 그 가운데 권중 사지기(卷中四之器)에 ‘형자류은 월자류옥(邢瓷類銀 越瓷類玉)’라고 써놓아 8세기중엽 중국 사회에서는 형주 백자(邢州白磁)는 은과 유사하고 월주청자는 옥과 유사하게 여겼다는 당시의 인식을 말해주고 있다. 청자의 이상으로 옥에 대한 동경은 동아시아세계의 공통적 관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권제8 고율시(卷第八 古律詩)의 「김군걸부소음녹(자)배용백공시운동부(金君乞賦所飮綠[磁]盃用 白公詩韻同賦)」가운데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라는 뜻의 ‘형연백옥광(瑩然碧玉光)’ 구절이 보 이며, 권제13 고율시「녹자연적자(綠瓷硯滴子)」에는 ‘고운 살결 백옥같구나’라는 뜻의 ‘치옥작기 리(緻玉作肌理)’라고 읊으며 청자의 질감을 옥에 비유하고 있다.
3)순청자의 절정기의 비색은 유층이 얇으며 비취옥 같은 녹색에 미세한 기포가 많은 失透性釉로 태토의 밝은 회색이 은은히 비쳐 보이는 상태를 가리킨다. 정양모, 「高麗靑磁」,『高麗靑磁名品特別展』(국립중앙박물관, 1989), p. 275, 『韓國의 陶磁器』(서울: 문예출판사, 1991), p. 203 참조.
1)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은 차에 관한 최초의 종합적 기록으로, 그 가운데 권중 사지기(卷中四之器)에 ‘형자류은 월자류옥(邢瓷類銀 越瓷類玉)’라고 써놓아 8세기중엽 중국 사회에서는 형주 백자(邢州白磁)는 은과 유사하고 월주청자는 옥과 유사하게 여겼다는 당시의 인식을 말해주고 있다. 청자의 이상으로 옥에 대한 동경은 동아시아세계의 공통적 관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권제8 고율시(卷第八 古律詩)의 「김군걸부소음녹(자)배용백공시운동부(金君乞賦所飮綠[磁]盃用 白公詩韻同賦)」가운데 ‘선명하게 푸른 옥 빛나니’라는 뜻의 ‘형연백옥광(瑩然碧玉光)’ 구절이 보 이며, 권제13 고율시「녹자연적자(綠瓷硯滴子)」에는 ‘고운 살결 백옥같구나’라는 뜻의 ‘치옥작기 리(緻玉作肌理)’라고 읊으며 청자의 질감을 옥에 비유하고 있다.
3)순청자의 절정기의 비색은 유층이 얇으며 비취옥 같은 녹색에 미세한 기포가 많은 失透性釉로 태토의 밝은 회색이 은은히 비쳐 보이는 상태를 가리킨다. 정양모, 「高麗靑磁」,『高麗靑磁名品特別展』(국립중앙박물관, 1989), p. 275, 『韓國의 陶磁器』(서울: 문예출판사, 1991), p. 20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