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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하제일 비색(翡色)청자 1 - 비색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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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건(前경기도자박물관 관장)

고려청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기의 하나입니다. 그 중에 일부는 맑고 깊은 푸른 유약색으로 인해 비색(翡色) 청자란 특별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 비색청자는 당시 중국인들조차 감탄해마지 않았던 아름다움을 자랑했습니다. 비색 고려청자에 간직된 비밀을 최건 前경기도자박물관 관장의 글을 통해 소개합니다. 이 글은 2012년 가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천하제일 비색청자’전에 맞춰 개최된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뒤 국립중앙박물관 발행의 『미술자료』에 수록됐던 내용을 최근 필자가 재정리해 게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1. 천하제일 고려비색(天下第一 高麗翡色)*

1) 비색 청자란 

고려시대에 제작한 청자 가운데 뛰어난 품격의 특상품(特上品) 청자를 가리켜 ‘비색(翡色)’청자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또 12세기에 중국인이 본 천하의 청자들 가운데 고려 땅에서 만들어진 비색 청자가 가장 뛰어나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는 평가 받았다는 사실도 거의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이다. 

당시 중국 기록에는 ‘고려비색 천하제일(高麗秘色 天下第一)’이라는 단락에 이어 ‘(중국 내의) 다른 곳에서도 만들고자 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했다’는 내용도 덧붙여있다. 이런 기록은 청자 제작의 종주국인 중국에서까지 고려에서 만든 청자의 조형적 아름다움과 사회적 기능이 높이 평가됐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당시의 중국청자가 본받아야 할 조형적 모델로서 ‘고려 비색청자’가 긍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사회적 정서까지도 증언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당혹스러운 점은 중국에서 천하제일로 손꼽힌 고려의 비색청자가 어떤 부류의 청자를 가리키는지 현재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관용적으로 써오던 ‘비색(翡色)’이란 단어의 뜻조차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123년 중국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徐兢)은 가장 뛰어난 고려청자를 가리켜 ‘비색’이라고 한다는 말을 고려 사람에게 전해들은 뒤 자신의 견문록인 『고려도경(高麗圖經)』(1124년 제작)에 그와 관련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당사자인 고려 쪽의 기록에는 ‘비색(翡色)’은 물론 ‘비색(秘色)’이라는 단어조차 발견되지 않아 ‘고려 비색’의 실체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그림 1. <청자 과형병(瓜形甁)> 국보94호 고려 12세기, 인종 장릉(仁宗 長陵, 1146년)출토, 높이 22.6cm 국립중앙박물관 

      
우리는 현재 ‘비색(翡色)’이라는 말을 일깨워 준 『고려도경』이 쓰여진 지 20여년 지난 뒤에 제작된, 인종 장릉(仁宗 長陵, 1146)에서 출토된 청자(그림 1)의 색깔을 가리켜 ‘비색’이라 부르고 있다. 

또 그보다 다시 50여년 지난 명종 지릉(明宗 智陵, 1202년)에서 나온 청자(그림 2)를 포함해 12~13세기에 제작된 특상품 청자의 유태색(釉胎色)을 가리켜 ‘비색’ 또는 ‘비색 계통의 유약’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고 있다. 

물론 중국인이 기록한 ‘비색(秘色)’이라는 추상적 표현과 비취색(翡翠玉)을 연상시키는 ‘비색(翡色)’이라는 은유적 표현만으로 실제 '고려 비색'이 어떤 색을 가리키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도2. <청자상감 여지문발(靑磁象嵌荔枝文鉢)> 고려13세기,명종지릉(明宗智陵, 1202년)출토,  입지름 19.8cm 국립중앙박물관



한편, ‘비색(秘色)’이나 ‘비색(翡色)’과 같이 추상적이며 은유적인 중국적 표현에서 눈을 돌려 고려 측 기록을 살펴보면, ‘청자(靑瓷)’, ‘청사(靑沙)’, 또는 ‘녹(자)(綠(磁))’와 같이 청색이나 녹색을 가리키는 구체적이며 현실적 색상을 지적해 이를 기록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명종 지릉에서 출토된 청자들에서 불과 10여년 뒤에 쓰인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린 청자를 주제로 한 시문(詩文)의 경우에도 ‘비색(翡色)’이란 은유적 표현 대신 구체적 색을 가리키는 ‘녹(색)(綠(色))’이라는 명백한 단어를 썼는데, 이러한 표현은 매우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서긍이 이규보 시대의 청자를 보았을 경우 ‘비색’이라고 말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13세기초반 이규보가 본 청자의 색은 실제 눈으로 본 그대로 녹색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비색’과 ‘녹자’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면서 청자 전성기로 알려진 12~13세기에 제작된 특상품 청자 가운데 절대편년 자료를 중심으로 유태색과 조형적 특징을 검토하면 ‘비색(翡色)’의 실체와 그 이후 전개되는 청자의 대체적인 전개과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과정에 12세기 전반의 『고려도경』을 전후한 시기의 청자와 중반 <인종 장릉(1146) 출토청자>와 <문공유 묘(文公裕墓, 1159) 출토청자>,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의 <청자상감 신축명(辛丑銘, 1181) 벼루>와 <명종 지릉(1202) 출토청자>, 13세기 전반의  <희종 석릉(熙宗碩陵, 1237년) 출토청자>와 후반 <간지명(干支銘) 청자>로 전개되면서 나타나는 유태색과 조형의 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청자의 조형이 입체적인 표현에서 평면적인 표현으로 중심이 이동하고 있고, 또 그러한 변화를 촉진시킨 상감 기법과 투명 유약에 대한 필자의 견해도 포함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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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2012 국립중앙박물관 제4회 한국미술 국제학술심포지엄 “고려청자와 중세 아시아 도자”에 발표후,『미술자료(美術資料)』제83호(국립중앙박물관, 2013.6),「‘고려비색(高麗翡色)’의 성격과 전개」pp. 201-220에 게재한 원고를 부분 교열한 것임. 제목은 「‘고려비색(高麗翡色)’의 성격과 전개」를「천하제일 고려비색(天下第一 高麗翡色)」으로 바꾸었음.  
1) 12세기 중국 태평노인(太平老人)의 『수중금(袖中錦)』에 실린 기사로 이 글에서 특히 주목한 부분은, ‘천하제일(天下第一)’조에서 “…定磁 …高麗秘色…皆爲天下第一也, 他處雖效之 終不及”이라고 한 내용이다. 정양모,「高麗陶磁に關する古文獻資料」,『세계도자전집(世界陶磁全集)』18.고려(高麗, 도쿄: 소학관(小學館), 1978), p. 269에서 재인용.

2)도자의 분류에서 첫째 기준은 제반 조형요소의 上品, 中品, 下品에 의한 분류이며, 왕실 소용을 특별히 특상품으로 분류하였다. 崔  健, 「靑磁窯址의 系譜와 展開」,『미술사연구』12(1998), pp. 3-20에서 ‘Ⅱ. 靑磁의 分類 基準’을 참고, 「‘干支’銘靑磁의 製作時期와 製作窯」,『高麗靑磁, 康津으로의 歸鄕』(강진청자자료박물관, 2000), pp. 81-109 참조. 마도해역 출수 청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상 음식기의 경우 유태의 두께와 번조법 등을 고려 할 때 中品으로 분류할 수 있고, 각각 유일한 상감주자와 화분받침대, 상감과 음각매병 등은 유태의 질과 기법 등 기술적 완성도에서 特上品 보다 한 단계 낮추어 上品으로 분류하는 편이 좋겠다.  

3)崔 健, 高麗陶磁性格展開,世界美術大全集東洋編 10(東京: 小學館, 1998), pp.335-342,

이 글에서 한국청자의 전개과정을 5단계로 나누었다.
1. 발생기( 9세기후기-10세기후기)  : 초기청자, 흑자백자, 철화상감기법의 발생
2. 세련기(11세기초기-11세기중기) : 청자의 세련과 시문기법의 다양화
3. 절정기(11세기후기-12세기중기) : 순청자(비색청자)의 절정, 상감청자의 세련
4. 성행기(12세기후기-13세기중기) : 상감청자의성행, 순청자의 보편화
5. 확산기(13세기후기-14세기후기) : 상감청자의 보편화, 다량생산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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