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조선시대 중기에 처음 등장하는 4점의 쌍용준을 살펴보았다. 이들 쌍용준은 몸통의 윗부분이 팽창해있고 아랫부분이 줄어든 이른바‘Y’자형의 준수하고 위엄 있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또 용의 얼굴은 작은 쌀점을 찍어 표현했고 여의두형의 큰 돼지 코에 늘씬한 몸체를 전방을 응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림 1-1) <백자청화 쌍용준 ①> 17-18세기 높이 56.0㎝ 개인소장
(그림 1-2) <백자청화 쌍용준 ①> 부분
이와 같은 특징을 보이는 첫번째 계통의 쌍용준이 물러나고 새롭게 등장하는 두 번째 계통의 쌍용준은 용의 얼굴에 국화판 점을 찍고 코도 영지모양 윤곽을 보이는 구름 같은 모습으로 대폭 작아진 코에 삼각형 모양의 앞니 한 개가 표현돼 있다. 아울러 비대해진 몸통으로 하강하며 머리를 바짝 치켜든 자세를 보여 첫 번째 용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그림 1-1,1-2)
두 번째 유형의 얼굴에 쌀점 대신 국화판과 같이 큰 점 주위에 작은 점을 찍어 넣은 경위는 분명히 알기 힘들다. 이러한 국화판 점은 16세기로 추정하는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소장 <백자청화용준>의 얼굴에 농담을 섞어 표현된 사례가 있다. 이런 표현 방식은 앞 시대의 여러 가지 표현 방식 가운데 신중하게 선택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는데 더구나 이러한 표현 방식이 일정기간 동안 유지된다는 점에서 얼굴에 쌀점을 찍은 첫번째 유형의 용에 비해 조선적 정서에 더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해석해볼 수 있다.
(그림 2-1) <백자청화 쌍용준 ②> 17-18세기 높이 47.2㎝ 호암미술관
(그림 2-2) <백자청화 쌍용준 ③> 17-18세기 높이 53.9㎝ 국립중앙박물관
두 번째 양식의 쌍용준은 현재 5점이 확인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개인 소장의 <백자청화 쌍용준 ①>(그림 1-1)과 호암미술관의 <청화 쌍용준 ②>(그림 2-1)는 등지느러미 속에 가시가 들어 있다. 반면 국립중앙박물관 <청화 쌍용준 ③>(그림 2-2)과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청화 쌍용준 ④>(그림 2-3)은 가시가 지느러미 위로 솟은 모습이다. 그리고 윗입술 수염도 앞서 2점은 보이지 않으나 후자에서는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어 차이를 보인다.
지느러미 위로 솟은 가시와 윗입술 수염은 조선전기의 청화 용준부터 첫 번째 양식의 용준을 포함해 세 점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가 되면 앞서의 2점을 포함해 조선시대 말기까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시와 수염의 유무는 전후를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먼저, 수염과 솟은 가시가 없는 3점을 대표하는 개인 소장의 <백자청화 쌍용준 ①>(그림 1-1)은 56.0㎝의 크기로 호암미술관 <쌍용준 ②>(그림2-1)의 47.2㎝ 보다 월등히 크다. 또다른 개인 소장품에 비해서도 유태의 상태가 안정돼 있다.
그러나 이 쌍용준의 형태는 전반적으로 둔중한 느낌이고 몸통 중심부가 크게 팽창한 모습이다. 따라서 넓어진 중앙부에 그려진 용의 몸체도 비대하며 네 발도 살이 많이 붙어있다. 이러한 육중한 몸의 용이 30°정도의 각도로 하강하면서 목을 곧추세우고 얼굴을 들어올린 자세는, 첫번째 유형의 용에서 보이는 근엄하고 준수한 모습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