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에도 향기로운 꽃을 피우는 매화는 지조 높은 선비에 비유되며 사군자의 하나로 손꼽힌다. 매화는 문인 사대부가 사회의 근간을 이룬 조선시대 초기부터 그림과 시의 소재로 많이 등장한다. 청화백자에 그려진 매화 그림 역시 시대별로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38-5 백자청화 매죽문 항아리(白磁靑華 梅竹文 壺) 15세기 높이 41.0cm 호암미술관 국보219호
초기 청화백자로 종속문양과 주문양이 전체를 메우다시피 꽉 차있다. 이처럼 문양이 많은 것은 대개 중국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15세기에 등장하는 매죽문은 문인 취향의 소재라기보다는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쓰인 듯하다. 어깨 죽지와 굽 부분에 둘러진 연판문 속에는 보주(寶珠) 문양이 새겨져 있어 도자기 자체의 존귀함을 나타내고 있다. 등걸부분에서 줄기가 X자로 교차하는 것이 초기 매죽문양에 보이는 특징이다.
백자청화 매죽문 항아리(白磁靑華 梅竹文 壺) 16세기 높이16cm 국립중앙박물관
초기의 청화백자 항아리 가운데 뚜껑까지 갖춘 완전한 형태는 매우 드물다. 작은 항아리이지만 구성이 완벽하다. 사진으로만 봐서는 큰 항아리처럼 느껴질 정도 자태도 늠름하다. 새 두 마리와 가지 끝의 청화색이 등걸의 색깔과 다른 것은 안료 속의 철분이 뭉친 때문이다. 등걸 옆에는 청초한 국화가 그려져 있고 뚜껑에는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여백을 그다지 남기지 않는 것이 초기 청화백자의 특징 중 하나다.
백자청화 매죽문 항아리(白磁靑華梅竹文壺) 15세기후반 높이 35.0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이 항아리는 어깨가 듬직하게 벌어진 전형적인 15세기 항아리이다. 구연부는 이 시대만의 특징으로 곡옥처럼 말려있다. 이런 형태의 구연부를 일본에서는 옥연(玉緣)식 구연부라고 한다. 세죽(細竹)의 대나무 세 그루가 벋어있는 것을 배경으로 그 앞쪽에 늙은 매화 등걸이 X자로 교차하며 얽혀있다. 가지 끝에는 화심에 네 개의 꽃잎을 단 활짝 핀 매화, 여전히 봉오리 상태인 매화가 잔뜩 달려 있다. 초기 청화백자 문양은 명나라 영향이 짙은 것과 조선의 독자적인 것으로 보이는 문양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 항아리는 후자에 속하며 그림의 격이 매우 높다.
백자청화 매죽문 항아리(白磁靑華 梅竹文 壺) 1481년 또는 1541년 높이31.3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명나라의 영향을 받아 문양이 꽉 들어찬 것이 특징이다. 구연부에 연꽃문, 어깨에 여두문 그리고 하단에는 변형 연판문을 돌렸다. 늙은 매화등걸이 구불구불 이어지는 가운데 가지가 X자로 교차하는데 이 역시 이 시기의 특징이다. 매화꽃은 꽃심 위쪽으로 네 개의 꽃잎을 그리는 방식으로 통일돼 있다. 굽바닥에 「신축년 9월에 이효동이 삼가 제조했다(辛丑九月日 李孝同奉造)」고 쓰여 있다. 제조에 관련된 인물의 이름이 나오는 희귀한 항아리이다. 신축년은 학자에 따라 1481년 또는 1541년으로 본다.
백자청화 매화분문 쌍이각항아리(白磁靑華梅花盆文 雙耳角壺) 18세기 높이 29.2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18세기 들어 다시 제작되기 시작한 청화백자는 옛 전통을 재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 항아리도 구연부와 어깨 그리고 굽 쪽에 당초문양, 여의두문양, 연판문양 등이 그려져 있다. 몸통 문양은 18세기 들어 나타나기 시작하는 시중의 취미생활을 반영하듯 화분에 키운 매화가 그려져 있다. 매화 등걸이 X자로 교차하는 등의 형태는 구식이나 매화꽃이 단면이 아닌 위에서 본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점을 새로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손잡이 부분에는 양쪽에 각각 만수(萬壽), 만복(萬福)이라고 쓰여 있다. 18세기 이후 종종 나타나는 구복, 장수 추구의 길상 문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