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하면 흔히 종이, 붓, 먹, 벼루 등 문방사보(文房四寶)를 연상한다. 이외에도 지통(紙筒), 필통(筆筒), 필가(筆架), 필세(筆洗) 등을 더할 수 있다. 이런 문방구류는 고려 시대부터 도자기, 즉 청자로 만들어 사용했다. 그렇지만 청자로 만든 문방구는 연적 이외의 것들을 제외하고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청자 연적은 소년, 소녀의 형상을 딴 것, 복숭아 모습을 한 것 등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조선 시대가 되면 사회 전체가 문인 중심의 사회로 바뀌면서 도자기, 즉 백자로 만든 문방구는 종류가 훨씬 다양해진 것은 물론 수적으로도 매우 많이 남아있다.
더욱이 18세기 후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 많은데 여기에는 경제 발전과 더불어 평민 사회가 양반, 문인 생활을 동경하거나 실제로 향유할 수 있게 된 때문으로도 여겨진다. 이 당시의 문방구 중에서 특히 연적은 세계 도자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가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이때의 연적은 문방구뿐만 아니라 여인네의 화장용기로도 쓰였다고 한다.
19세기의 연적은 닭, 해태, 용, 거북, 개구리, 나비 등과 같은 동물이나 곤충 형태에서 복숭아, 감, 참외, 파초 등의 식물 그리고 물고기, 집, 돈궤, 보주, 금강산 등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백자청화진사 무자문 필통(白磁靑畵辰砂撫子文筆筒) 19세기전반 높이 13.5cm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백자청화 초화문 소형연적(白磁靑畵草花文小形硯滴) 19세기 높이 2.8~1.8cm 선문대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