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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_6 청화(靑畵)와 청화(靑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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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래된 국한문 혼용의 서적에는 청화를 가리키는 한자어로 靑花, 靑畵, 靑華가 혼용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옛 기록에 이들 3가지 용례가 모두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화 백자의 한자 표기는 그릴 화(畵)자를 사용한 靑畵(청화)가 맞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畵자는 ‘그릴 화’ 자로 청색 안료로 그림을 그렸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산화철을 안료로 그림을 그린 경우에는 철화(鐵畵)라고 통일해 부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청화백기에 대한 조선 초기의 기록을 보면 대개 花자로 쓰여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도자기관련 기록내용을 면밀히 조사한 적이 있는 고려대 방병선 교수에 따르면 세종 29년 9월1일자의 실록 기록에 ‘임금이 성균관에 청화백자 큰 잔 2개, 백자 큰 잔 2개, 백자 큰항아리 4개 그리고 술 150병과 생선 및 고기를 하사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때의 원문에 청화백자를 ‘청화사(靑畵沙)’라고 표기해 놓았다고 한다.
방 교수에 따르면 그 이전의 실록 기록에는 모두 청화(靑花)로 표기돼있다고 한다. 이 점에 대해 그는 중국의 영향 아래 만들게 된 청화백자에 대해 어느 정도 제작 기법을 이해하게 되자 청화를 그림(畵)으로 인식한 결과가 아닐까 라는 추정을 하고 있다.

일본의 관련서적에서는 여전히 靑花라는 표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청화백자 뿐만 아니라 중국의 청화백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중국은 화(華)의 간자체인 华를 사용해 靑华로 통일해 쓰고 있다.
한글 표기가 일반화되기 이전인 1990년대 중반까지 간행된 국내의 전문서를 보면 畵자와 華자가 혼용되고 있다. 드물지만 간혹 花자가 보이기도 한다.
(참고 『왕조실록을 통해 본 조선도자사』)


백자청화 보상화당초문 항아리(白磁靑華 寶相華唐草文 壺) 15세기전반 높이 28.0cm
*이 그림이 수록된 일본 쇼가쿠칸(小學館) 간행의 『세계도자전집』19 이조편(1980년)에는 《白磁靑花 宝相華唐草文 壺》로 표기돼있다.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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