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는 구우면 희게 보이는 태토에 투명한 유약을 발라 구운 백색 자기를 말한다. 백자는 중국에서 6세기 중엽인 남북조(南北朝)시대 말기에 처음 등장해 수나라를 거쳐 당나라 때가 되는 7세기에 비로소 기법적으로 완성된다. 특히 당나라 때 만들어진 백자는 당백자(唐白子)라고 하는데 이는 신라에까지 전해져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적이 있다. 또 백제의 무녕왕릉에서도 찻잔 형태의 백자가 발견되었다.
이 무렵 중국은 ‘남청북백(南靑北白)’이라고 해 남쪽 지방에서는 주로 청자를 제작하고 화북 일대는 백자를 구웠다. 한반도에 백자의 제조 기법이 전해된 것은 9세기 후반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무렵 전라도 해안지방에는 중국 남방의 월주요계통의 청자 기술이 전래되어 있었는데 백자의 제조기법 역시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고려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용인의 서리 가마터에는 이 무렵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이는 백자 파편이 다수 발굴되었다.
백자는 도자기 제조기술의 발달이란 면에서 보면 청자보다 발전된 형태의 도자기라고 할 수 있다. 백자를 만드는 흙, 즉 백토는 청자토와 달리 철분 함유량이 적은 게 특징이다. 이런 흙, 즉 질 좋은 백토를 구하는 데에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개 태토로 사용할 흙을 구한 뒤에도 많은 노동력이 드는 철분 제거작업이 필요하다. 그 위에 투명한 유약을 찾아내는 기술 개발도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백자는 고려 시대에도 제작되었으나 청자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들면서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생활 기물로 적극 받아들여지면서 크게 발전했다. 특히 백자의 흰 색은 조선의 통치 이념인 유교적 이상을 잘 반영하는 색깔이기도 해 조선 왕조는 처음부터 백자 사용을 적극 후원했다.
조선 왕실은 건국 이후 한동안 전국 각지의 가마에서 도자기를 진상 받아 사용했으나 성종 초기 무렵 경기도 광주군 일대에 사옹원(司饔院)의 분원(分院)을 설치하고 관영 가마를 운영하면서 백자를 제작하게 했다.
조선시대 백자의 특징은 백색 그 자체와 조선사회의 이상을 상징화한 문양과 형태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백자의 흰색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분류에 따라서는 회백(灰白), 순백(純白), 유백(乳白), 난백(卵白), 황백(黃白), 차백(茶白), 청백(靑白) 등으로 나뉠 수 있다. 이들 흰 색을 조금 더 뭉뚱그리면 노르스름한 빛을 띠는 유백색(乳白色), 눈과 같이 흰 설백색(雪白色) 그리고 약간 푸른기가 도는 청백색(靑白色)으로 나뉜다.
15세기에 등장하는 초기 순백자 계통은 약간 회색을 띈 백색이며 금사리 백자는 유백색 그리고 분원 초기의 백자는 설백색으로 분류된다. 그리고 19세기 이후의 분원 백자는 약간 푸른빛이 도는 백자색이다.
백자 호이대병(白磁 虎耳大甁) 초당 7세기 높이 59cm 일본 개인
백자 항아리(白磁 壺) 15~16세기 전체 높이 32.2cm 국립중앙박물관
백자양각 용문 주전자(白磁陽刻 龍文 注子) 19세기 높이21.9cm 호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