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분청사기는 전국 각지에서 만들어져 왕실에 진상되었던 까닭에 처음부터 사용처가 정해져 있었다. 또 진상되는 도중에 사사롭게 빼내서 사용하는 금하기 위해 제작하면서부터사용처를 새겨 넣으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
분청사기에 새겨진 관청 이름, 즉 관사명(官司銘)은 분청사기의 제작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즉 조선시대 초기의 관청은 업무의 종료 혹은 변화에 따라 한시적으로 설치된 같은 것들이 있다. 따라서 해당 관청이 존재했던 시기가 바로 그와같은 관청명이 쓰인 분청사기의 제작 시기가 되는 것이다. 또한 관청명은 문양과는 다른 인문학적 상상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수집가나 애호가의 큰 관심을 끌기도 한다.
분청사기의 관청이름은 우선 공안부(恭安府), 경승부(敬承府), 인녕부(仁寧府), 인수부(仁壽府), 덕녕부(德寧府) 등과 같이 세자나 왕실 종친들이 살던 곳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왕실과 직접 관련된 관청으로 내섬시(內贍司, 음식 관리), 예빈시(禮賓司, 접객 관리), 장흥고(長興庫, 물품 관리), 사옹원(司饔院, 궁중연회 관리) 등도 있다. 현재까지 확인되는 관청 이름은 11개 정도이다.
분청사기 인화문 '성안장흥고'명 접시(粉靑沙器 印花文 成安長興庫銘 ?匙) 15세기 높이 3.3cm 국립중앙박물관
분청사기 인화문 '진해인수부'명 접시(粉靑沙器 印花文 鎭海仁壽府銘 ?匙) 15세기 높이3.3cm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