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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_32 고려청자 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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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일대의 가마터.(1964년)
들판이 맞닿아있는 안쪽 산기슭에 가마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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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리 발굴사진

고려시대 초기의 청자가마는 지방호족의 영향아래 전라도 일대, 충청도, 경기도, 개성 인근의 황해도 등지에 다양하게 분포했다. 그러나 고려 왕권이 강력해지고 정치 제도가 완성되는 11세기 후반부터는 차츰 전라남도 강진(康津)과 전라북도 부안(扶安) 일대로 집중되었다. 12세기 이후에는 이 두 지역 이외에 고급 청자는 거의 제작되지 않았다. 고려 청자의 뛰어난 솜씨를 말해주는 청자는 모두 이 곳에서 만들어졌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강진의 대표적 청가 가마터가 있는 대구면 사당리(大口面 沙堂里) 가마터는 1910년부터 알려졌으나 본격적인 발굴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1965년부터 이뤄졌다. 이곳에서는 청자기와 조각이 확인됐을 뿐 아니라 12세기를 대표하는 비색 청자와 상감청자의 파편이 다수 발굴됐다.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保安面 柳川里) 가마터는 강진 사당리 가마터와 함께 12세기 절정기의 청자를 굽던 가마로 인근에 40여개의 가마터가 있었다. 현재는 대부분 논밭으로 개간돼 그 흔적 조차 확인하기 어렵게 됐다. 하지만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이곳에서 발굴된 도자기 파편은 이화여대박물관에 다수 소장돼있다.

관영으로 운영되던 강진과 부안의 청자 가마는 14세기 후반이 되면 고려 왕조의 쇠퇴와 함께 맥이 끊기게 된다. 이 무렵 청자 기술자들이 전국으로 흩어졌는데 약 50여년 뒤인 세종때 조사한 기록(세종실록지리지)을 보면 당시 전국 3백여곳에 자기소와 사기소가 있는 것으로 전한다.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4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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