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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양각당초문접시 12세기 높이 1.9cm |
도자기를 가마에 넣고 구을 때 균형을 잡기 위해 평편한 도지미(陶枕)를 받쳐 놓고 굽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가마 속에서 굽는(번조, 燔造) 동안 유약이 녹아내리면서 유약이 도자기와 도지미 사이에 스며들어 둘이 서로 달라붙게 된다. 이를 무리하게 떼어내게 되면 도자기 밑바닥이 상해 상품 가치를 잃는다. 따라서 도지미와 도자기가 잘 분리되도록 또다른 받침을 고여 굽는 되는데 이때 굽에 받치는 것을 굽받침이라 한다.
초기청자는 중국 월주요의 제작방식에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불에 잘 견디는 흙, 즉 규석이 많이 들어간 흙을 작게 빗어 굽받침으로 사용했다. 이런 굽받침은 불에 잘 견디는 흙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내화토 받침, 내화토목(耐火土目)이라고 부른다. 고려시대 중기가 되면 순전한 규석 덩어리인 뽀얀 차돌(규사, 硅砂)을 구해 이를 잘게 부숴 굽받침으로 사용했다. 이것이 규사목(硅砂目)이다. 그리고 후기로 내려오면 그냥 모래를 뿌리는데 그친 모래 받침, 태토를 빗어 받친, 태도 비짐눈을 사용했다.
모래를 사용한 경우에는 떼어낸 이후에도 바닥이 거친 상태 그대로 여서 강가의 큰 자갈로 바닥을 문질러 남아있는 모래를 털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