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백자 상감모란유문 병(白磁象嵌牧丹柳文甁) |
고려 시대하면 흔히 청자만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고려시대에도 전시기에 걸쳐 백자가 제작, 생산됐다. 고려 백자는 청자의 발전과 맥을 같이해 기형, 문양, 제작 기법면에서 청자와 비슷한 점이 많다. 그렇지만 도자기를 빗는 흙, 즉 철분이 덜 들어 있는 백토를 사용한 것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철분이 많이 든 태토로 빗은 도자기가 청자이며 철분이 덜 섞인 백토를 찾아 거기서 다시 철분을 제거한 뒤에 그 흙을 태토로 사용해 만든 도자기가 백자이다.
고려백자 양각연화문 접시(高麗白磁 陽刻蓮花文楪匙)12세기 입지름 15.1cm 호암미술관 |
따라서 제작 기법상의 분류로 치자면, ‘시대’를 가리키는 접두어를 붙이지 않고 그냥 청자, 백자라고 불러야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고려를 대표하는 도자기로 청자가 거론되고 또 고려청자라는 말이 일반화되어 왔기 때문에 백자 중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을 가리켜 편의상 고려 백자라고 부르게 됐다.
최근까지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고려 백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초기 청자와 거의 같은 시기인 10세기 초반인 것으로 보고 있다. 고려 백자의 종류는 병, 매병, 합, 접시, 대접, 향로 등 청자의 종류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양이 적을 뿐이다.
고려백자 순화4년명 항아리(高麗白磁 淳化4年銘 壺) |
고려 시대의 백자는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말까지 청자가 쇠퇴하면서 함께 퇴락해 거의 생산이 중단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려시대 백자를 대표하는 자료로 이화여대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고려백자 순화4년명 항아리를 꼽을 수 있다. 이 항아리의 바닥에는 「순화4년 계사 태묘제1실, 향기장 최길회조(淳化四年 癸巳 太廟第一室 亨器匠 崔吉會造)」라고 돼있다.
순화는 중국의 북송시대 태종때 쓰던 연호로 990년에서 995년까지 사용했다. 순화 4년은 고려로 치면 성종 12년, 즉 993년에 해당한다. 높이 35.3cm의 길죽하게 생긴 이 항아리는 몸통의 색깔이 누르스름하다. 또 태토 역시 철분이 많이 섞인 청자토가 아닌 백토에 가까워 일반적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백자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