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청자 병(綠靑磁甁) 10세기~12세기 |
녹청자 다완(綠靑磁茶碗) 10세기중반~11세기중반 |
조악하기는 하지만 청자 태토를 사용해 짙은 녹색이 나는 유약을 발라 구운 청자를 녹청자라고 한다. 녹청자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본다. 하나는 신라시대 토기에 잿물 유약을 발라 구운 회유(灰釉) 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보는 설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뼈를 담는 골호에 녹청자로 만든 사례가 더러 있다.
두 번째는 초기에 고려청자가 보급되는 과정에 고급 청자와 달리 일반 서민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약간 수준이 떨어지는 청자가 보급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설이다.
초기의 고려청자는 중국의 발달된 월주요(越州窯) 계통의 영향을 받아 고급청자 생산에 주력했다. 그러나 이런 월주요 계통의 다완은 갑발(匣鉢)을 씌워 제약해야 하는 등 제작 비용이 매우 많이 들었다. 청자 문화가 점차 확산되면서 모래 등 잡물이 섞인 청자 태토를 사용해 유약도 회유와 흡사한 것을 써서 구으면 녹갈색을 띠는 청자를 만들어 널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초기의 대표적인 녹청자 가마로 인천 경서동, 현재 인천국제컨트리클럽 안에 있는 가마터가 유명하며 그 외에 전국에 약 50여곳의 녹청자 가마터가 확인되고 있다. 또 지난 1983년과 1984년에 발굴된 완도 앞바다의 침몰선에서 나온 3만여점의 도자기는 거의가 녹청자 도자기였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병, 대접, 접시, 다완 등 민간에서 사용하는 생활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