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한글 이름이 유행하고 있지만 이것은 순전히 국내용이다. 도자기의 이름을 정하고 짓는 것은 전문가들에 부여된 중요 업무중 하나이다. 어느 도자기 한 점에 대해 거기에 담긴 특징과 성격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또 비슷한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이름이 필수적이다. 학계의 이름 짓기에는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는데 이는 중국,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공통된 것이다. 도자기의 이름을 짓는데 있어 대전제는 가장 큰 특징부터 이름을 붙여 나간다는 점이다.
우선 첫째는 여러 도자기가 각각 다르게 보이는 결정적 차이인 제작 방법에서 시작한다. 즉 청자냐, 백자냐 아니면 분청사기이냐 하는 것을 정한다. 이것이 정해지면 두 번째는 그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 즉 사용된 기법이 무엇인지를 살핀다. 이는 같은 백자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특징이 무엇이냐 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청자에 사용된 기법은 바로 청자의 분류와도 관련되는데 청자의 기법에는 상감, 철화, 진사, 양각, 음각 등이 있다. 상감은 문양을 넣을 곳에 홈을 파서 다른 색깔이 나는 흙을 넣은 것이고 철화는 갈색 나는 안료(산화철, 酸化鐵)로 그림을 그린 것이며 진사는 산화동(酸化銅)을 칠한 것을 가리킨다. 음양각은 뾰족한 것으로 문양을 새기거나 혹은 문양 주변을 파내 문양을 도드라지게 장식한 기법을 말한다.
그런데 어느 청자에는 아무런 문양도 들어 있지 않는 것도 있다. 이 경우는 없을 소(素)자를 써서 소문(素文)이란 말을 쓰는데 이는 단순한 분류상의 용어로 일반적으로는 그냥 순청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실제 각각의 청자에 이름을 붙일 때 아무런 문양이 없을 경우에는 순 자를 떼고 청자 매병, 청자 항아리 등으로 부르는 게 보통이다.
그 다음에 붙여지는 이름은 주로 사용된 문양, 주문양에서 연유한다. 청자에는 연화문, 당초문, 동자문, 포도동자문, 포류수금문 등 다양한 문양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병의 기형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 병인가, 찻잔인가, 주전가인가 등이다.
청자상감 진사포도동자문 주전자 및 승반(靑磁象嵌辰砂彩葡萄童子文水注,承盤》
12세기후반 높이36.1cm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청자상감진사채포도동자문 주전자 및 승반》를 위의 설명대로 구분해 보면 ‘청자+상감+진사채(오늘날은 동채라는 말을 많이 쓴다)+포도동자문+주전자와 승반’으로 풀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자도 마찬가지이다. 백자가 정해지면 청화 기법인가, 철화 기법인가를 보고 그 다음에 문양을 살피며 마지막으로 형태에 맞춰서 이름을 붙이게 된다.
백자청화 투각모란당초문 호(白磁靑華透刻牧丹唐草文壺)
18세기전반 높이27.7cm 국립중앙박물관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의 보물 240호는 청화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투각으로 모란 당초문을 파넣은 항아리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박물관에서는 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그냥 《백자 모란덩쿨무늬 항아리》라는 제목으로 전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항아리를 학술 대회 등에서 정확하게 부를 때에는 엄연히《백자청화 투각모란당초문 호(白磁+靑華+透刻+牧丹唐草文 +壺)》란 이름을 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순한글식 제목설명은 친철한 배려인지 아니면 관람객 수준을 깔본 태도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당당한 이름을 놔두고 흐리멍덩한 이름을 붙이는 일은 ‘국가적 사업’의 태도는 아닌 것만은 분명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