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 기린형 삼족향로(靑磁麒麟形三足香爐) 12세기 높이 20.6cm 간송미술관
고려시대의 사극드라마에 백자가 나온다면 모두 웃는다. 고려 시대에 백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수량으로 치면 1%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고려 청자로 반상기 한 첩을 잘 차려놓았다면 이것도 코미디가 된다. 고려시대에 청자로 찻잔과 대접 그리고 주전자와 같은 그릇을 만들기는 했어도 6첩, 8첩 반상기는 결코 만든 적이 없다.
말하자면 각 시대별로 만들어진 도자기 기형의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 물론 대접, 찻잔, 접시 같은 일반적인 생활 용기는 공통이지만 어느 한 시대에만 주로 등장하는 기형도 있다. 불교를 국교로 숭상하며 크게 보호 장려했던 고려 시대의 청자에는 불교 의식이나 신앙 생활에 관련된 도자기들이 특히 많다. 예를 들어 불전에 향을 피우는 향로, 관정(灌頂) 의식 등에 사용되었던 주전자, 정병 등이 이런 예식과 관련된 도자기이다. 또 매병이 많은 것도 고려 청자의 한 특징이다.
분청사기 조화모란어문 장군(粉靑沙器彫花牧丹魚文俵甁) 15~16세기
높이17.6cm 길이27.8cm 국립중앙박물관
청화백자 매죽문 연적(靑華白磁梅竹文硯滴) 18세기 높이6.7cm
반면 조선시대는 유교를 국교로 삼은 양반 사회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양반의 생활과 관련된 도자기가 많이 제작됐다. 특히 18세기후반 들어서는 연적, 필통, 지통, 붓받침 등과 같은 양반들의 기호품에 속하는 문방구류들이 다른 시대에 찾아보기 힘들 정로 많이 제작됐다.
앞서 얘기한 반상기는 19세기 들어 경제 발전과 더불어 음식 문화가 발달하면서 비로소 등장한 생활용기이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존재할 수 없다.
또 조선시대 초기에서 임진왜란 무렵까지만 제작된 분청사기의 경우에는 물이나 술을 담아 사용한 장군, 자라병 등 청자나 백자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기형이 많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