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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화 속 초서] 앞 여울로 흘러내려가도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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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옛 서화를 감상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한자입니다. 그림과 함께 쓰여 있는 화제는 시각적 아름다움에 보탬이 되는 요소가 되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통해 더 깊은 감상을 가능하게 하기도 합니다. 완벽한 문장의 해석은 어렵더라도 의미를 아는 한자를 찾아 그림의 의미를 새겨보고 싶은데, 또박또박 쓴 해서체도 어렵지만 흘려 쓴 초서의 경우에는 더욱 더 난감합니다. 못 알아들어도 외국 노래를 즐길 수 있고, 한문을 몰라도 서화를 즐길 수 있지만, 한 글자, 한 글자씩 초서의 모양을 익혀서 화제의 의미를 짐작하며 그림을 보는 재미를 더 느껴보자는 높지 않은 목표를 가져봅니다.


낚싯대를 꽂아놓고 한 어부가 배 안에서 팔자 좋게 잠들어 있다. 상단에 간단한 화제가 적혀 있다. 세 글자에 네 글자, 총 7글자 어구가 있고, 좀더 작은 글씨로 네 글자를 더했다. 
(다 알아볼 수 있는 분은 이 코너를 건너 뛰시길.) 앞의 7글자 중에는 행서체에 가까워 알아보기 좋은 것도 있다. 알아보기 힘든 글자 중 두 글자를 꼽아본다.  

流(①)前灘也不(②)



점 세 개를 흘려 찍은 듯한 두 번째 글자(①)와 구불구불한 마지막 글자(②)는 무엇일까?
이들은 아주 쉬운 한자이면서 많이 나오는 글자 중 하나다. 

①  下
여러 사람들이 쓴 ‘아래 하(下)’ 초서 글씨를 참고하면 보통 위 아래 세 개의 점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동기창이 쓴 下


문징명 下


조맹부 下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를 비교해보면 변화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똑같은 이치로 윗 상(上)자는 반대로 위에 두 점, 아래 한 점이 위치한다. 


축윤명 


축윤명 上


② 知 
마지막 글자는 ‘알 지(知)’자이다. 오른쪽 입 구(口)자의 형태가 뭉그러진 것도 있고 살아 있게 쓰는 경우도 많다. 


동기창 


조맹부 


미불 


축윤명 知


이 知자와 비슷하게 쓰는 초서 중에 ‘갈 거(去)’ 자가 있다. 왕희지의 초서학습용 시 초결가(草訣歌)에는 ‘長短分知去(획의 길고 짧음으로 ’知‘와 ’去‘를 구분한다)’는 부분이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 아래의 초결가에서 知와 去를 비교해 보자.


 
세밀한 형태 구분보다는 문맥 중에서 찾아야 된다고들 한다. 여튼 下와 知 자를 넣으면 화제는 다음과 같이 완성된다. 어조사의 쓰임이나 문법을 자세히 모르더라도 대강의 의미는 알 수 있다. 

流下前灘也不知    (* 灘 탄 : 여울)
앞 여울로 흘러내려가도 모르겠네

깊이 잠든 아이한테 ‘업어가도 모르겠다’고 하듯이, 이 어부가 마음 놓고 깊이 잠든 모습에 대해 배가 저 앞의 여울까지 흘러내려가도 모를 정도로 편안하구나, 하는 감탄일 것이다. 

이 어구를 인터넷에 찾아보면 원시를 금방 알 수 있다. 
출전은 당나라 시인 두순학杜筍鶴의 「계흥(溪興)」으로 원문은 다음과 같다. 

山雨溪風捲釣絲 산에 비오고 강에 바람부니 낚시질 거두어
瓦甌篷底獨斟時 배 안에서 질그릇 사발에 술 따라 마시니
醉來睡着無人喚 취해 잠들어도 부르는 사람없어 
流下前灘也不知 앞 여울로 흘러내려가도 모르겠네

(* 瓦甌 와구. 질그릇 사발  * 篷 봉. 거적을 덮은 작은 배. * 斟 짐. 술을 따르다.)

알고보니 그냥 잠든 것이 아니고 한 사발 술을 마시고 취해 잠들었고, 주변에 불러 깨우는 사람마저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취해 잠든 어부의 흥을 부러워한 것은 누구일까. 

7글자 화제 뒤쪽에 써 있는 뒤의 네 글자를 더 읽어본다. 

檀翁醉墨
단옹이 취해서 쓰다(그리다).

단원檀園 김홍도가 늙은 자신을 단옹이라 가리킨 것이니 김홍도가 만년에 (취해) 그린 그림이다.


김홍도 <어부오수도漁夫午睡圖> 종이에 수묵담채, 29x42cm, 개인
流下前灘也不知 檀翁醉墨


이렇게 上, 下, 知, 去 네 글자를 익혔다. 다른 그림 속에서 발견했을 때 반갑게 알아볼 수 있기를.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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