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은 한국 최초의 서화 인명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1864-1953)이 삼국 시대의 솔거(率居)에서 구한말의 임진수까지 서예가(576명), 화가(392명), 서화가(149명) 등 1,117명에 대한 기록을 역대 자료에서 발췌해 1917년에 완성한 책입니다. 활자본은 1928년에 간행됐습니다.
오세창은 조선 말기의 개화파 중국어 역관인 오경석(吳慶錫)의 아들이고 그 자신이 서화가이자 전각가였습니다.
위창 오세창(吳世昌 1864(고종1)∼1953)
오세창은 조선 말기의 개화파 중국어 역관인 오경석(吳慶錫)의 아들이고 그 자신이 서화가이자 전각가였습니다.
오세창, <임남해각자(臨南海刻字)>, 비단에 먹, 24×33㎝, 1924년도(좌)
오세창, <萬歲報社之章> ‘만세보’는 1906(고종 10) 6월 17일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발의로 창간된
일간신문으로 오세창이 사장이었다. (우)
근역서화징은 한국회화사 연구는 물론 서예사 연구에 있어 절대적인, 없어서는 안 될 자료로 평가됩니다.
오세창은 당대에는 최고 감식안으로 간송 전형필의 컬렉션 형성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울러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중 한 사람인 독립운동가이기도 합니다.
한학자 홍찬유 감수로 동양고전학회가 2001년에 번역본(『한글 근역서화징』시공사)을 펴낸 바 있는데, 홍찬유 선생이 쓰신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써 있습니다.
한학자 홍찬유 감수로 동양고전학회가 2001년에 번역본(『한글 근역서화징』시공사)을 펴낸 바 있는데, 홍찬유 선생이 쓰신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써 있습니다.
오세창, 『근역서화사(槿域書畵史)』(1928년 출간 때에는 『근역서화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책은 우리나라의 보고(寶庫)이다. 위창 오선생은 고고학 대가의 적전(嫡傳)으로 구한국이 장차 망하려하는 때에 태어나셨다. 그때 일인(日人)이 그 변변치 않은 무력을 믿고 우리나라에 침입하여 잔인무도하게 민족을 짓밟으며 못할 짓이 없었으니 강도가 빈집에 들어와 회빈작주하는 것과 같았다...그리하여 선생은 고심적려하신 끝에 기묘한 처방을 발견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근역서화징'을 출간할 계획을 세우신 것이었다....그런데 이와 같이 귀중한 책이 순한문으로 기록되어서 지금같이 한문을 숭상하지 않는 때에 이 책을 독해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국역할 것을 계획하고 1993년 3월 5일에 정후수, 나종면, 김인규, 안외순, 조이옥, 오연숙, 김보경, 김상엽 등과 유도회관에 모여서 '근역서화징 국역위원회'를 조직하고 불녕(不侫)이 총감독이 되어 원문해설을 담당하고 국역은 소장파위원이 담당하여 신구합작으로 하기로 작정하였다..."(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