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왕오운(四王吳惲)
네 사람의 왕씨와 오씨, 운씨.
청나라 초기에 활동하며 이후 큰 영향을 미친 6거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왕시민, 왕감, 왕원기, 왕휘의 4왕에 더해 오력과 운수평이 그 사람들입니다.
청나라 초기에 활동하며 이후 큰 영향을 미친 6거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왕시민, 왕감, 왕원기, 왕휘의 4왕에 더해 오력과 운수평이 그 사람들입니다.
왕시민(王時敏 1591-1680)은 강소성 태창(太倉)의 명문가 출신으로 누동파(누동은 태창의 옛 이름입니다)의 창시자입니다.
집안에 소장된 송원화를 통해 옛 화법을 익혔으며 황공망을 근간으로 동기창에 사사했습니다.
왕시민 산수도
왕감(王鑑 1598-1677) 역시 태창 출신으로 명말 시인 왕세정의 증손자입니다. 원말 4대가에 심취하며 황공망의 화법을 적극 익혔습니다.
왕감 장송선관도
왕휘(王翬 1631-1717)는 강소성 상숙(常熟) 출신으로 자는 석곡(石谷)입니다. 부유한 문인 집안에서 태어나 황공망의 산수화풍을 익히다 왕감의 눈에 띠어 문하에 들어갔습니다.
강희제의 명에 따라 북경에 올라가 ≪남순도(南巡圖)≫ 12권을 제작했습니다.
강희제의 명에 따라 북경에 올라가 ≪남순도(南巡圖)≫ 12권을 제작했습니다.
왕휘 남순도
왕원기(王原祁 1642-1715)의 호는 녹대(麓台). 왕시민의 손자로 강희제때 진사급제한 문인화가입니다. 황명으로 서화이론서『패문재서화보(佩文齋書畵譜)』를 편찬했습니다.
왕원기 방황대치산수도
오력(吳歷 1632-1718)의 자는 어산(漁山). 왕휘와 마찬가지로 상숙 출신으로 왕시민의 문하에서 원인 필법을 익혔습니다.
왕휘와 함께 우산(虞山, 상숙의 옛이름)의 거장으로 손꼽힙니다. 50세 이후 기독교를 믿어 마카오로 이주해 살기도 했습니다.
왕휘와 함께 우산(虞山, 상숙의 옛이름)의 거장으로 손꼽힙니다. 50세 이후 기독교를 믿어 마카오로 이주해 살기도 했습니다.
오력 추산어은도
운수평(惲壽平 1633-1690)은 강소성 상주(常州, 과거의 비릉) 출신으로 호는 남전(南田)입니다. 청군에 박해를 받은 명가출신으로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매화로 생활했습니다. 시와 글씨에 뛰어난 삼절로 불렸으며 왕휘와 절친했습니다. 맑고 청아한 화훼화를 많이 남겼습니다.
운수평 추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