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
원나라 말기에 활동한 문인화가인 황공망, 예찬, 오진, 왕몽 4사람을 원말사대가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원나라초 조맹부의 복고주의적 화법에 동의하여 동원, 거연 같은 사람들의 강남산수 양식을 계승했습니다.
명나라에 들면서는 다시 "황오예왕(黃吳倪王)"으로 불리며 특히 심주, 문징명 등 오파 화가들에 의해 높이 칭송됐습니다.
이들은 원나라초 조맹부의 복고주의적 화법에 동의하여 동원, 거연 같은 사람들의 강남산수 양식을 계승했습니다.
명나라에 들면서는 다시 "황오예왕(黃吳倪王)"으로 불리며 특히 심주, 문징명 등 오파 화가들에 의해 높이 칭송됐습니다.
황공망 <천지석벽도>
황공망(黃公望 1269-1354)은 소주의 상숙(常熟) 출신으로 어릴 때 양친을 잃어 절강성 온주의 친척집에서 자랐습니다. 점쟁이, 희곡작가, 도사 등을 전전하다 조맹부를 만나 50살이 넘어 화가로 활동했습니다. 79살 때 그린 <부춘산거도>가 대표작입니다.
황공망 <부춘산거도> 부분
예찬(倪瓚 1301-1374)은 강소성 무석(無錫)의 부유한 집 출신으로 집안에 소장한 서화가 많았다고 합니다. 고고한 인격으로 남과 잘 사귀지 않았으며 결벽증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지요. 52살에 가산을 정리해 주변에 나눠주고 고향을 떠나 20년 동안 유랑 생활을 보낸 끝에 74살에 죽었습니다.
예찬 <육군자도>
오진(吳鎭 1280-1354년)은 절강성 가흥출신으로 호는 매화도인입니다.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그림을 팔거나 학숙을 열어 생활하며 청빈 고고한 은둔 생애를 보냈습니다.
왕몽(王蒙 1308-1385년)은 절강성 오흥(吳興)출신으로 조맹부의 외손인 명가출신입니다. 부친이 황공망, 예찬과 친교가 있어 황공망에게 그림을 배우게 됩니다. 거연 등의 영향으로 치밀하면서 장대한 산수화를 그렸습니다. 원말 혼란기에 항주 북쪽 황학산에 피난해 스스로 황학산초(黃鶴山樵)라고 호를 지었습니다. 시에도 재능이 있어 명초에 관리로 등용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정변에 연루돼 옥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