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에 삿된 것을 물리치고 경사스런 일을 기원하기 위해, 소위 "벽사진경(辟邪進慶)"을 위해 제작된 그림을 세화(歲畵)라고 합니다.
세화가 그려진 것은 조선시대 초부터입니다. 당시의 기록에는 조정에서 도화서 화원들로 하여금 가을부터 세화를 제작토록 해 연말 연초에 문무 대신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이 기록에는 ‘세화’란 용어 외에 ‘문배(門排)’라는 말도 쓰였습니다.
까치호랑이(국립중앙박물관)
문배라고 불렸던 것은, "문" 앞에 무언가를 걸어두거나 그려서 사악하고 부정한 것을 물리쳤던 고대의 벽사신앙에서 유래했습니다.
그 이외에 중국의 문신(門神)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기는 합니다.
그 이외에 중국의 문신(門神)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기는 합니다.
세화는 닭과 호랑이와 같은 주술성이 강한 동물 그림이 주로 그려졌고, 이 외에 금갑(金甲) 장군, 위지공, 진숙보와 같은 수호 신장들도 많이 그렸습니다.
여기서 금갑 장군이란 중국에서 섣달그믐날 대문에 붙여 벽사를 기원하는 전설의 인물 '울루(鬱壘)'가 무장을 한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위지공은 당나라때 무장이며 진숙보는 남조 진(晉)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위지공은 당나라때 무장이며 진숙보는 남조 진(晉)의 마지막 황제입니다.
수성노인도(국립중앙박물관)
세화는 이후 재액예방 보다는 행복에 대한 기원쪽이 더욱 강조되면서 길상(吉祥), 진경(進慶) 의미로 바뀌어갔고, 아울러 새해를 맞이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축원하며 주고받는 이른바 증답용(贈答用) 그림으로 발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