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로만 그리지 않고 채색 안료를 사용한 그림을 채색화라고 합니다. 채색화로 그린 산수화 가운데 광물질 안료인 '석록(石綠. 공작석malachite)'과 '석청(石靑, 남동광Azurite)'을 주로 사용해 그린 그림을 '청록산수(靑綠山水)'라고 합니다. 중국 당나라 때 유행했고, 조선시대에는 숙종이 좋아하여 청록산수가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청록산수는 도화서 화원들에 의해 그려져 궁정화풍인 것이 많습니다.
작자미상 <어초문답도> 비단에 채색, 58.7x43cm, 조선 숙종 41년(1715년) (부분)
청록산수와 비슷한 용어로 '금벽(金碧)산수'가 있습니다.
금벽산수는 청록산수보다 먼저 사용되었는데 남송시대 조희곡(趙希鵠)이 지은 『동천청록집(洞天靑祿集)』에는 북송말기의 산수화가인 왕선(王詵)의 그림을 설명하면서 '금벽산수'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금벽산수는 청록산수보다 먼저 사용되었는데 남송시대 조희곡(趙希鵠)이 지은 『동천청록집(洞天靑祿集)』에는 북송말기의 산수화가인 왕선(王詵)의 그림을 설명하면서 '금벽산수'라는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설명에서 조희곡은 당나라때 화가 이소도(李昭道)가 처음으로 금벽산수를 그렸다고 전하며,
금벽산수라는 말은 돈황 벽화에 보이는 산수화 등에 금니(金泥)를 비롯해 돌에서 채취한 푸른 색(碧)의 광물성 안료를 주로 사용해 화려하게 그린 그림을 가리키면서 붙은 이름이라고 생각됩니다.
원나라때 탕후(湯垕)가 지은 『화감(畵鑑)』에는 ‘이사훈(李思訓, 이소도의 부친)의 저색(著色)산수는 금벽을 사용해 광채가 빛났다’고 하며 ‘남송의 조백구, 조백숙이 청록산수를 구사해 이름을 떨쳤다‘고 써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금벽산수라는 용어가 이후 청록산수로 정착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전 이소도 <명황행촉도> 송대 모본, 타이페이 고궁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