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도(桃源圖)는 중국 동진(東晋 317-420)의 도연명(365-427)이 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비롯된 이상향을 소재로 다룬 그림을 일컫는다.
도원은 동양인의 정신적 귀의처였기 때문에 동양의 문학과 회화에서 끊임없이 다루어졌다.
한국의 도원도는 조선시대 초기<몽유도원도>부터 근대까지 꾸준히 그려졌는데, 생략적이고 개성적인 작품들이 등장하며 변모되었다.
안견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1447년 견본담채 38.6x106cm 일본 덴리대학교
도연명의『도화원기桃花源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나라 태원(376-396) 연간에 무릉 사람이 물고기를 잡아서 생활했는데
시냇물을 따라가다가 길의 원근을 잃어버리고 복숭아꽃이 들어선 수풀을 만났다.
언덕을 낀 수백 보의 사이에는 다른 나무는 없고 꽃다운 풀이 깨끗하고 아름다운데
떨어지는 꽃잎이 어지러이 흩날리고 있었다.
어부는 매우 이상하게 여기고 다시 앞으로 가서 그 수풀 끝까지 가 보려고 하였다.
숲은 시냇물이 발원한 곳에서 끝나더니 문득 하나의 산이 나타났다.
그 산에는 작은 입구가 있고 어렴풋이 빛이 있는 것 같아 배를 버려두고 입구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극히 협소해 겨우 사람이 통과할 만 했으나 다시 수 십보를 걸어가니 밝게 확 트여 있었다.
토지가 평탄하고 넓었으며 집들은 정연하고 좋은 밭, 아름다운 연못, 뽕나무, 대나무 등이 있으며
길은 서로 통해 있고 닭과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가운데서 농사일을 하는데 남녀의 의복은 외지 사람들과 같았고
노인과 어린아이가 즐거운 기색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어부를 발견하고 크게 놀라며 온 길을 물었고 어부는 자세히 대답해 주었다.
집으로 와 주기를 요청하더니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였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들은 선대에 진나라의 난리를 피해 처 자식과 고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오게 되었고
다시는 나가지 않게 되어 외부 사람과 멀어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지금이 어느 세상인가를 물었는데 한나라가 있었던 것도 모르니 위나라와 진나라야 말할 것도 없었다.
어부는 수일동안 거기에 머물러 있다가 떠났는데 그 곳 사람들은 외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였다.
어부는 그곳을 나온 후에 배를 찾아 지난번 왔던 길을 따라가며 곳곳에 표시를 해 두었다.
무릉군 성 아래에 이르러 태수를 알현하고 이러한 사정을 말해 주었다.
태수는 즉시 사람을 시켜 그를 따라가 지난번 표시한 곳을 찾도록 하였으나 길을 잃어버리고 다시는 찾지 못하게 되었다.
南陽의 유자기는 고상한 선비인데 그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 보려고 계획하였으나 찾지 못하고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그곳에 가는 길을 묻는 사람이 없어졌다.”
이러한 도화원기의 내용은 도연명이 살았던 육조시대부터 모방 작품들이 등장할 정도로 이상향을 노래한 대표적인 시문으로 인식되었고 많은 문학과 회화의 소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