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나이 51세로 때인 1836년 8월 1일에 쓴 편지이다. 제주 유배 전의 글씨로 추사체의 변천 과정을 검토할 때 주요 참고자료가 될 만하다.
겉봉에 보이는 수신인은 은산(殷山) 현감인데 그가 누구인지는 미상이다. 발신인을 '김 참판'으로 표기한 걸 보면 당시 추사가 병조참판으로 있었던 때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새 관직 임명과 아우 김명희의 외직(영유 혐감) 임명 소식이 주목을 끈다.
보내준 선물에 고마움을 표시한 것으로 끝을 맺었다.
[겉봉] 殷山正堂執事回納
金參判謝書
秋來遠溯, 卽伏承惠狀, 謹審凉初, 篆餘動靖万重, 仰慰. 松桂朱墨, 忙閒何居? 庸是勞勞. 弟奉老如昨, 而意外恩資, 久益感皇. 阿仲甄邑, 又際此時, 到底鴻造, 與天無涯, 不知何以報答耳. 俯惠珍儀, 錄注遠及, 拜登挹謝, 另切感戢. 餘艱草, 不備書儀.
丙申 八月 初一日 弟 正喜 拜謝
[겉봉] 은산(殷山) 정당(正堂, 집무소) 집사 앞 납입
김참판 답장
가을 들어 멀리서 그리웠는데, 지금 보내주신 편지를 통해 초 가을에 공무 보시며 잘 지내신다고 하니 위안이 됩니다만, 송계(松桂, 조용히 독서함)와 주묵(朱墨, 공무를 봄) 가운데 어디가 좋으신지요? 거듭 위로의 말씀 전합니다.
저는 노친 모시며 지내는 건 이전과 다름없습니다만 뜻밖에 성은을 입어 관직에 임명된 건 시간이 흐를수록 황송하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둘째[김명희]의 외직(外職, 영유현감) 견용(甄用, 퇴직자 선발 임용)이 이 즈음에 이루어져서, 우리 집안의 크나큰 복이 하늘만큼 크기만 하니 앞으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보내주신 귀한 선물은 멀리까지 관심 가져주신 것으로, 매우 감사합니다. 그럼 경황없이 적으며, 서신의 격식을 다 갖추지 못합니다.
병신년(1836) 8월 1일 정희 답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