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북청 유배 시절인 1852년 5월 29일에 과천에 있는 두 동생에게 보낸 편지이다.
집안의 세세한 안부와 자신의 현재 상황을 자세히 언급했다. 그 밖에 자신을 찾아온 순찰사의 아들이 장래가 총망돼 보인다는 의견과 유군(柳君)이 찾아와 객지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는 말로 끝맺고 있다.
참고로 추사는 이 해 8월에 해배된다.
[겉봉]
果寓入納 仲季同收
靑城平書
畵士行書, 想先收, 間頗連雨有成歲意, 麥仍大熟, 圻湖亦勻登耶? 數日來朝霧漫空如瘴, 海門甚近此地年常, 而但不祟人云. 庚伏在卽, 夏已二分過熱輪之下, 似無寒門. 辰惟渾履連晏, 仲健, 季又嫂節益勝, 儉孫痘後夬完, 較之花前, 更堅固, 且無他襍症後惱耶? 遙遙欣祝, 無以爲比. 上下家大小, 悉佳, 炎節之苦, 不止甚惱? 種種耿懸. 吾昨頑今頑, 姑無損, 懋亦極, 日飮東井, 似有所合矣. 第慘朞不遠, 情理特殊, 老懷尤難裁定, 亦奈何! 蠅甚於箕都, 無開硯作字, 姑少蚊, 未知又何如耳. 巡使子進士, 爲飮水而來, 卽爲見訪, 年才二十, 相貌敦重雅好, 大有成就之喜, 古家少年, 當爲後來英殊, 嘉歎不已. 柳君亦來, 稍紓旅泊之懷耳. 本營殿最上去, 因校便略付數字, 盡未得他引. 姑不宣.
壬子 五月 卄九 伯累
[겉봉]
과우(果寓) 입납. 둘째와 막내 함께 보기 바람.
북청에서
화사(畵士)가 가는 편에 보낸 편지는 앞서 받아봤으리라 생각하네. 그사이 연이어 내린 비로 풍년의 기미를 보이고 보리 수확이 풍성한데 기호 지역 또한 모두 풍작인가?
이곳은 며칠 동안 아침 안개가 마치 장기(瘴氣)처럼 퍼졌는데 바다와 가까운 이곳에 늘상 있는 일이지만 사람에게 해롭지 않다고 하네. 복날이 가까우며 여름의 삼 분의 이가 지나 더 이상 추이가 없을 듯하네.
이즈음에 식구들 모두 평안하고, 둘째도 건강하고, 막내와 제수도 아주 잘 지내며, 손자 검(儉)은 마마가 완쾌돼 봄철보다 더욱 좋고 그밖에 다른 후유증은 없는가? 멀리서 축원하는 마음 무엇과도 견줄 수 없네. 상·하 집안 모두 안녕하며 더위의 고뇌가 아주 심하진 않은가? 이래저래 걱정이네.
나는 어제도 오늘도 하릴없이 지내며, 아직 별 탈은 없네만, 애써 노력을 다해 날마다 동정(東井, 동쪽에 있는 샘물)을 마시는데 적합한 점이 있는 듯하네.
기일(朞日)이 멀지 않아 정리(情理)가 매우 남다른데, 노년의 감회가 더욱더 추스르기 어렵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파리가 기도(箕都, 평양)보다 심해서 먹 갈아 글씨를 쓸 수가 없네만 모기는 적어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순찰사의 아들 진사(進士)가 물을 마시러 오는 길에 찾아왔네. 나이가 스물인데 중후하고 고아해서 큰 성공의 기쁨을 가져다줄 것 같고, 전통 있는 집안의 소년이 미래에 훌륭한 인물이 될 것 같아 찬탄해 마지않았네.
류군(柳君)도 찾아왔는데 객지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네. 본 영(營) 전최(殿最, 관원 평가서)가 올라가는 인편에 간략히 몇 자 적으며, 여타의 이야기까지 다 적진 못하네. 그럼 이만.
임자년(1852) 5월 29일 백루(伯累, 유배중인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