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복낭(太僕郞)에서 궁령(宮令, 閟宮-종묘의 직책)으로 이직됐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그 시기가 언제 쯤인지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서체로 보면 30대 무렵이 아닐까 추정된다. 연도는 없이 정월 18일에 보낸다는 기록만 있다.
갑자기 몸이 아팠는지 불편한 몸에 대한 여러 정황들을 장황하게 묘사했는데, 그 모습이 눈에 잡힐 듯 선하게 전해진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지 큰 글씨로 쓰고나서 큰 글씨 사이로 나머지 내용을 이어 적었다.
[겉봉]
禹峴靜座攬收
閟直謝書
우현(禹峴, 오산烏山) 앞
비직(閟直, 閟宮-종묘 직장)에서 답장 보냄
自老兄之出矣 直所謂巷無居人 値玆歲新 而遠思如潮 忽拜華函 宛是顔髮謦欬之餘也 從審體中百護曼相 新年之慰 此外更無二也 第瘡濕 一時之苦 而便成年課者 亦甚怪矣 間已快痊否 旋切仰慮 少弟 衰相病祟 交侵迭闖 凡屬老醜諸種點簿 無一闕 而比前秋冬相對時 直一美少年 今此穢惡危怪 令人駭走 如是而其能久視耶 不恨速化 但會心人之更未歡娛而別 此甚悵黯耳 時臘 忽以太僕郞 才過六七日 移拜宮令矣 抗此垂老之顔 强此難醫之病 冒廉任唾而行 烏帽黃塵之誤人 本如是耶 在直數日 疾滯氣鬱 撟舁還家 未及調治 今又就直 直次苟艱 一僚作覲行 而不來 實非火急人可以銷受 奈何奈何 昨德金戚兄語到那中 果然有悵想之漲臆而已 開春後或有京駕之期耶 餘心擾不備禮 正月 十八日 少弟 拜手
노형이 떠나고 나서 이곳은 ‘마을에 사람이 없는’ 형국이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그리움이 조수처럼 밀려왔는데 뜻밖에 귀한 편지를 받으니 마치 직접 얼굴을 뵙고 말씀을 듣는 듯합니다. 그동안 신의 가호로 편안하시다 하니 새해의 기쁨이 이것 말고 더 없습니다. 한편 창습(瘡濕, 두창 진물)은 한 때의 고통 정도여야 하는데 해마다 으레 발생하는 것이 돼버린 것은 대단히 괴이한 일입니다. 요사이 쾌차하셨는지요? 대단히 염려됩니다.
노형이 떠나고 나서 이곳은 ‘마을에 사람이 없는’ 형국이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그리움이 조수처럼 밀려왔는데 뜻밖에 귀한 편지를 받으니 마치 직접 얼굴을 뵙고 말씀을 듣는 듯합니다. 그동안 신의 가호로 편안하시다 하니 새해의 기쁨이 이것 말고 더 없습니다. 한편 창습(瘡濕, 두창 진물)은 한 때의 고통 정도여야 하는데 해마다 으레 발생하는 것이 돼버린 것은 대단히 괴이한 일입니다. 요사이 쾌차하셨는지요? 대단히 염려됩니다.
아우는 노쇠한 몸에 병마가 빈틈을 타고 쳐들어와 늙은이에게 찾아오는 각종 문제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가을 겨울 만났을 때의 모습은 그나마 미소년이었습니다. 지금 갖은 악기(惡氣)와 기괴한 위험이 사람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는데 이래서야 오랫동안 세상을 볼 수 있겠습니까. 하루빨리 저승으로 떠나는 일이야 아쉽지 않습니다만 마음 알아주는 이와 다시 즐거움을 나누지 못한 채 이별하는 것이 대단히 서글플 뿐입니다.
섣달 무렵 태복낭(太僕郞)에 임명된 지 육칠일 만에 궁령(宮令)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다 늙은 얼굴을 쳐들고 치료하기 어려운 병을 이끌고서 염치와 비난을 무릅쓴 채 애써 임지로 떠났으니, 사모 쓴 홍진 세상의 삶이 본디 이처럼 사람을 오도하는 것입니까. 출근한 지 며칠 만에 병이 쌓이고 기운이 소진해 남의 손에 들린 채 집으로 돌아왔는데, 몸조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지금 다시 출근했습니다. 그런데 입직(入直, 출근)한 곳이 곤란한 상황에 처해서, 동료 한 사람이 근친(覲親, 부모를 찾아뵘)을 위해 떠난 뒤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니, 실로 화급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를 어찌해야겠습니까.
어제 덕금(德金)의 인척 형과 그 곳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정말 서글픈 생각이 무럭무럭 일었습니다. 새봄이 시작된 뒤 서울 발걸음 계획이 있으신지요?
그럼 경황이 없어 이만 줄입니다.
정월 18일 아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