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암 채제공(樊巖 蔡濟恭 1720-1799)
조선후기의 남인 문신. 자는 백규(伯規)이며 호는 번암이다. 본관은 평강(平康).
1735년 15살에 진사 급제한 뒤 24살 때인 1743년에 문과에 합격했다. 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하며 발탁했다. 이후 한성판윤, 강화유수 등을 거쳤다. 정조 후반에 우의정, 좌의정이 되어 정치를 안정시킨 공로가 있다.
정범조, 이헌경, 신광수, 정재원, 안정복과 가깝게 지냈다. 최헌중, 이승훈, 이가환, 정약용 등은 정치적 후배이다.
서화 감상을 즐겨 여러 서화에 간략한 감상평을 남겼다. 전하는 글씨는 초서 간찰이 대부분이다.
[자료 1] 서간: 41x47.5cm(서울옥션 제공)
西出陽關 惟兄一人是故人耳 若將依倚 而至營以來 依舊是千里相望 懷思何可言也.(...)
서쪽 양관(陽關)으로 나올 때 친구라곤 오직 형 한 분뿐이어서 앞으로 의지하며 지내려했습니다만 영(營)에 오고 나서도 여전히 천리 먼 곳에서 서로 바라보는 형국이니, 그리운 마음 어찌 이루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풀이: 김규선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