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문신, 서예가. 본관을 기계이며 자는 덕휘(德輝)이고 호는 기원이다.
부친은 현감을 지낸 유언수이며 사촌형 유한준은 당대의 문장가로 이름 높았으며 형조참의를 지냈다.
음관으로 관직에 나가 영춘현감을 지냈으며 컬렉터인 남공철과 교류했으며 김홍도, 이인문 등 당시 일류 화가들의 그림에 화제를 쓴 것이 많이 남아 있다.
글씨는 중국에서 전래된 비첩을 익혀 전서와 예서로 이름 높았다. 추사 김정희도 그가 전서와 예서에 조예가 깊은 점을 인정했다. 단 그의 문예관에 따라 ‘문자기가 적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자료 1] 대학 구절: 140x26cm(서울옥션 제공, 위창 오세창 구장품)
誠意正心修己治人
생각을 진실하게 갖고, 마음을 바르게 하고,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
[자료 2] 고시: 122.5x64.5cm(서울옥션 제공)
故人閒相尋 친구가 한가로이 찾아와
共寄一第宇 한 집에서 함께 기탁하네
山水爲留行 산수가 발길을 멈추게 하노니
无勞具鷄黍 굳이 닭과 기장을 장만하지 말게나
(풀이: 김규선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