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 황운조(道谷 黃運祚 1730-1800)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서예가. 본관은 창원이며 자는 사용(士用)이고 호는 도곡 외에 도천(道川), 오수(寤修)를 썼다.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 때 공을 세운 황일호의 현손이다. 음직으로 인천부사를 거쳐 돈녕부 도정까지 올랐다.
윤순, 김상숙과 함께 강도삼절(江都三絶)로 불렸다. 황운조가 연기군수로 있을 때 충청병사 이광섭이 초대한 연회에 당시 연풍현감으로 있던 김홍도가 초대받아 휘호한 적이 있다.
김상숙과는 동학이다. 글씨를 잘 써 정조의 명으로 간행된 『춘추좌전』의 목활자 서체를 조윤형과 함께 썼다. 이규상은 ‘황윤조는 해서를 잘 썼는데 획이 매섭고 법이 정연했다’라고 했다.
[자료 1] 주자 글: 23.5x30cm(오세창 구장품, 서울옥션 제공)
跋陳光澤家藏東坡竹石
東坡老人英秀後凋之操 堅確不移之姿 竹君石友庶幾似之 百世之下 觀此畫者 尙可想見也.(...)
진광택 집안에 소장한 소동파의 죽석도에 대해
동파노인의 우뚝해 시들지 않는 지조와 견고해 바꾸지 않는 자태는 대나무와 바위가 거의 닮았다. 백대 후에 이 그림을 보는 사람도 이 점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풀이: 김규선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