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 황윤석(頤齋 黃胤錫 1729-1791)
조선후기의 어학자이며 노론계 문신. 본관은 평해이며 자는 영수(永叟)이다. 이재 이외에 서명산인(西溟散人), 운포주인(雲浦主人), 월송외사(越松外史) 등의 호도 썼다.
김원행의 문인으로 1759년 진사에 합격한 뒤 장릉참봉, 목천현감, 전의현감 등을 거쳤다.
10살 때부터 죽기 전인 63살 때까지 보고 듣고 공부한 모든 것을 일기로 적은 방대한 분량의『이재난고』를 남겼다. 『이재난고』에는 당시의 국어학, 음운학 등의 자료가 상당수 들어있어 학계에 귀중한 자료로 손꼽힌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이재난고로 보는 조선 지식인의 생활사』에는 강관식 교수가 그가 생전에 보았던 회화 자료를 분석한 「조선후기 지식인의 회화경험과 인식」이 들어있다.
[자료 1] 자작시: 33x48cm(서울옥션 제공)
日蒙先施三絶 愛翫無斁 明發杳然 情見于辭
少日高文獨不群
白頭漁艇小湖雲
悠悠俊顧都閒氣
誰念完人有鄭君(...)
요사이 3수의 절구를 먼저 보내주셨는데 완상하느라 손에서 뗄 수 없었습니다. 내일 떠나면 만남을 기약을 없을 터 그 마음을 시에 담습니다.
젊은 날 고상한 글 홀로 빼어났거늘
백발에 고깃배는 호수 구름보다 작네
세상에 인재들 모두 훌륭하나
완벽한 정군(鄭君, 정홍유鄭弘儒) 있음을 누가 알까.(...)
(풀이: 김규선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