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어당 김진상(退漁堂 金鎭商 1684-1755)
조선후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이며 자는 여익(汝翼), 호는 퇴어(退漁)이다. 김장생의 5대손으로 부친은 예조참판 김만채이다. 노론.
1699년 16살의 나이로 진사에 급제했고 1712년 29살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영조 때 등용되어 부제학, 대사성, 대사헌을 거쳐 좌참찬까지 이르렀다.
글씨로 이름이 높았으며 주로 노론 인사들의 비문을 많이 썼다. 김수증(金壽增 1624-1701) 이후에 예서 비를 가장 많이 쓴 것으로 전한다. 대표작으로 <송규렴 신도비>등이 있다.
시고: 33x49cm(서울옥션 제공)
海山淸晤 久不能忘 而未辦重遊 亦闕候問 只有引領切切而已.(부분)
해산(海山)에서의 청정한 만남은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일인데, 다시 노니는 것을 마련하지 못하고 안부 묻는 것조차 결여했으니 그저 목을 길게 뺀 채 그리워하는 마음만 간절할 뿐입니다.(부분)
(탈초 번역: 김규선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