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하 윤순(白下 尹淳 1680-1741)
조선 후기의 문신, 서가. 본관은 해평으로 자는 중화(仲和)이며 호는 백하 외에 학음(鶴陰 ), 나계(蘿溪), 만옹(漫翁)을 썼다. 임진왜란 때의 명신 윤두수의 5대후손이다. 정제두의 문인이며 정제두의 동생 정제태의 사위이다. 노소 분당이후 윤증, 박세당 등 소론 학맥을 따랐다.
1712년(33)에 진사시에 장원급제하고 1713년 증광문과에 급제했다. 서장관으로 청에 다녀온 경력이 있으며 공조, 예조 판서를 지냈다. 평안도관찰사 재직 중 순직했다.
이하곤, 이정제, 이덕수 등과 교유했고 정제두 문하의 심육과도 가까웠다.
시, 서, 화 모두 빼어났다. 특히 글씨는 해, 행, 초서가 주로 남아있다. 해서는 왕희지, 안진경, 소식, 문징명을 두루 수용했고 특히 행서는 미불을 받아들였다.
서예사적으로는 미불과 동기창 서풍의 수용함으로서 18세기 후반의 서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
[자료 1]
시고: 32.5x6cm(서울옥션 제공)
당나라 시인 배적(裴迪)의 「목란시(木蘭柴)」를 초서로 쓴 것이다.
蒼蒼落日時 鳥聲亂溪水 緣溪路轉深 幽興何時已
푸르르 너머 해가 질 때
개물 물가 새소리 요란하구나
시냇물 따라 길이 더욱 으슥하니
그윽한 흥취 가실 일 있으랴
(탈초 번역: 김규선 선문대교수)
[자료 2]
서간: 26x49cm(서울옥션 제공)
李上舍案右
伏惟辰下 侍采儘吉 季難靑髩上庠 聳賀亡己 泛看榜眼 未得悟其得中.
이 상사(李上舍)께
지금 부모님 모시며 잘 지내시는지요? 막내 동생이 젊은 나이에 상상(上庠, 성균관)에 오른 것은 축하하기 그지없습니다. 방안(榜眼, 2등으로 금제한 사람)을 허투로 봐 합격 여부를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부분)
(탈초 번역: 김규선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