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연 김창흡(三淵 金昌翕 1653-1722)
조선 후기의 문인.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자익(子益)이며 호는 삼연이다. 서울서 태어났다. 김상헌의 증손이며 영의정 김수항의 여섯 아들 중 셋째이다. 큰형 창집은 영의정, 둘째형 창협은 예조판서, 지돈녕부사를 지냈다. 노론.
15살 때 이정구의 손자인 이단상(李端相 1628-1669)에게 학문을 배웠다. 과거에 관심이 없었으나 부친의 명으로 1673년(21살)때 진사시에 합격했다. 1689년 남인정권 등장때 부친이 사사되자 영평(永平, 경기도 포천)에 은거했다.
형 창협과 함께 학문과 문장으로 이름이 높았다. 특히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손꼽힌다. 『삼연집』이 있다.
글씨는 가학에 바탕을 두었으나 예서 기운이 담겨있어 부드럽지만 여유가 있다.
자작 시고: 43x48.5cm(서울옥션 제공)
1702년(임오)12월12일에 지은 자작시「출산삼별(出山三別)」등 시 3수를 쓴 것이다.
出山三別
七日從遊巖壑中 看君襟抱古人同 魯無君子斯焉取 牙有知音爾乃聰
洙泗一源存寤寐 崑山片玉委窮通 向來崖寺虛明意 移就朱書大着功
산을 나서며 세 곳과 이별하다
칠일 동안 산천을 함께 노닐며,
그대의 가슴 옛 사람과 같음을 알아보았네.
노(魯)나라에 군자가 없다면 이를 어디서 취하랴,
백아(伯牙)의 지음(知音)처럼 그대 훌륭하네.
수사(洙泗)의 근원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고,
곤륜산 한 조각 옥은 세상 운수에 맡기네.
지난 날 산골 절의 허명(虛明)한 뜻을,
붉은 글씨로 옮겨오는데 큰 힘을 들였네.
(탈초 번역: 김규선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