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 1629-1711)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의령이며 자는 운로(雲路)이며 호는 약천 외에 미재(美齋)도 썼다. 현령 남일성의 아들로 소론이다.
송준길 문하에서 수학하고 1651년(23살) 진사 합격, 1656년(28살)에 별시문과 을과로 급제했다. 이조참의, 대사성, 함경도관찰사, 병조판서를 거친 뒤 영의정에 올랐다.
숙종 때 당쟁의 와중에서 국정전반에 경륜을 펼쳤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서화도 능했으며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등을 남겼다.
『숙종실록』에 ‘글이 법도가 있고 아름다웠으며 글씨의 획 또한 예스럽고 힘찼다. 집에 있거나 조정에 나가거나 모두 굳게 절개를 지켜 변하지 않았다’라고 기록돼 있다. 스스로 평생 남에게 구걸하는 글자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이덕무은 『청장관전서』에서 ‘정승 남구만은 육서(六書)에 통달하였으니 그가 쓴 금석문을 보면 가히 알 수 있다’고 했다.
[자료 1]
서간: 28.5x48cm(서울옥션 제공)
1709년(기축) 11월2일에 쓴 서간이다. 비문을 부탁받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 논한 것이다. 자손들의 이름을 더 넣자는 의견에 대해 그는 가보(家譜)에 해당하는 사항이므로 비문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해제: 김규선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