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서 윤선거(魯西 尹宣擧 1610-1669)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파평이며 자는 길보(吉明), 호는 노서, 산천재(山泉齋)이다. 서인으로 시호는 문경(文敬). 부친은 대사간 황(煌)이며 아들은 유명한 윤증(尹拯)이다. 김장생의 아들 김집의 문인.
1633년(24살) 식년문과에 형 문거와 함께 급제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 피난 갔으나 처만 자결하고 자신은 살아남았다.
이후 벼슬에 나가지 않고 김집 문하를 출입하며 예학을 연구했다. 예론 문제에서 윤휴(尹鑴)를 옹호한 이유로 송시열의 배척을 받았다. 이후 서인은 송시열의 노론과 윤선거 문하의 소론으로 갈라지게 됐다.
글씨는 이지정(李志定 1588-1650)의 필법을 이어받아 초서가 활달하고 힘찼다. 형 순거, 문거와 함께 3형제가 모두 글씨로 이름을 유명했다.
서간: 24x41cm (서울옥션 제공, 오세창 구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