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춘당 송준길(同春堂 宋浚吉 1606-1672)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은진이며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이다. 노론으로 시호는 문정(文正). 부친은 영천군수 이창(爾昌)이다.
어려서 이이를 사숙했고 20세때 송시열과 함께 김장생의 문하가 됐다.
1624년(19살)에 진사시 합격 이후 학행(學行)으로 천거받아 1630년 세마(洗馬)에 제수됐다. 효종 즉위이후 송시열과 중용되며 병조판서, 우참찬 등을 지냈다.
글씨는 독학했으나 10살 때 글씨를 명필 이시직이 보고 감탄했다는 말이 전한다. 스승 김집의 영향으로 석봉체를 주로 썼다. 글씨로 이름을 날리며 ‘우암찬, 동춘필, 문곡전(김수항 전서)’라는 말을 들었다. 왕실에서도 하명을 내려 시책(諡冊)과 병풍 글을 쓰게 했다. 대전 계족산의 대자 암각 ‘초연물외(超然物外)’ 외에 <송이창 묘비> <이시직 묘갈> <박팽년 유허비> 등의 글씨가 있다.
[자료 1]
서간: 29x42cm (서울옥션 제공)
바닷가에 귀양 가있는 이 참봉에게 보낸 서간으로 병오년(1666년)에 임금의 은혜를 입어 몸을 보중하며 잘 지낸다는 안부를 전했다.
(해제: 김규선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