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순천으로 자는 관옥(관옥), 호는 북저이다. 음사로 참봉에 제수되었다.
26살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갔으나 광해군 시절 정권을 잡은 북인들과 반목하며 지방관을 전전했다. 1620년부터 이귀 등과 반정을 도모해 인조반정(1623) 때 대장으로 추대돼 거사를 성공시켰다. 이후 정사 1등공신에 책록되어 이조판서, 좌의정, 도체찰사, 영의정을 역임했다.
글씨는 왕희지, 왕헌지 부자를 본받아 뛰어났다.
[자료 1]
서간: 25x33.5cm(서울옥션 제공)
*정묘호란이 일어난 해(1627년)의 3월3일에 쓴 서간이다.
體幕軍官之來 謹承令札 憑審比日起居有相 悲喜之交集 不能自定 忽此主辱之日 戰參戎師 不能奮義討賊 見此無前之恥 而不能蹈海自決 全生苟活 只自長痛而已.
막부의 군관이 올 때 쓰신 편지를 받고 그동안 잘 지내신 줄 알게 되니 슬픔과 기쁨의 교차로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습니다. 지금 성상이 욕을 당하시는 때에 전쟁에 참여한 군사들이 의리에 분발하여 적을 치지 못하고 있으니 이러한 전에 없는 수치를 보고서도 바다로 뛰어들어 목숨을 끊지 않고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니 스스로 통탄할 뿐입니다.
(번역: 김규선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