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청주이며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자는 도가(道可)이며 호는 한강이다.
6대조 총(摠)과 그의 아우 탁(擢)이 개국공신으로 책봉돼 대대로 한양에 살았으나 부친이 성주이씨와 결혼하며 성주에 정착했다. 5살 때 이미 신동으로 불리웠으며 7살 때 『대학』 『논어』 의 뜻을 깨쳤다고 전한다.
21살에 향시에 합격했으나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며 이황과 조식의 문하를 드나들며 수학했다. 여러번 벼슬을 사양하다가 청녕현감을 시작으로 관직 생활을 해 강원도 관찰사, 형조참판, 대사헌 등을 거쳤다. 임진왜란 때에는 통천군수로 있으면서 각지에 격문을 띄워 의병을 선도했다.
글씨에 능했으나 남겨진 수적이 많지 않다. 글씨는 스승 이황에 가까운데가 있다.
[자료 1]
서간: 21.5x23.5cm(서울옥션 제공)
(부분 번역)
卽日淸和 雅履何似 向遡可喩 僕來時迫於急還 取路杞溪 故不得更奉 追恨不已...
맑고 화창한 지금 어떻게 지내신지요? 그리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돌아올 때, 서둘러 돌아오느라 기계(杞溪)쪽으로 길을 택한 탓에 다시 뵙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번역: 김규선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