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인, 서화가. 본관은 풍양이고 자는 희온(希溫), 경온(景溫)이며 호는 창강(滄江) 외에 창추(滄醜), 취추(醉醜), 취옹(醉翁), 취병(醉病) 등을 썼다.
성혼의 문인 조수륜이 부친이고 서화가 조지운의 아버지이다. 당색은 서인. 부친은 조속 18살 때 김직재의 무옥에 연루돼 옥사했다.
1623년(29) 인조반정에 공을 세웠으나 훈명(勳名)을 사퇴하고 덕산 현감(33살), 김제군수(54살) 등 지방관을 전전했다.
시서화 삼절로 불리며 그림은 매, 죽, 산수, 화조에 두루 능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선(李選 1632-1692)는 『창강유고』발문에 ‘선생을 뵈올 적마다 온 집안이 텅 비어 쓸쓸하고 아침 저녁 끼니조차 끓이지 못했으나 그래도 항상 태평스러웠다’고 말하며 오직 그림과 글씨만을 좋아했다고 했다.
글씨는 원대 서예가 선우추의 초서를 수용해 섬세하면서도 유러한 필치를 보였다.
『해동금석총목』에 임천의 조사렴 묘갈, 김제의 이계맹 비문을 썼다고 전한다.
그 외 51살 때 쓴 초서 「다가(茶歌)」가 간송미술관에 전한다.
[자료 1]
서간: 22x32cm(서울옥션 제공, 오세창 구장)
해제(부분)
伏聞二郞第二子不意化去云. 想客裏傷痛, 何可堪忍. 此兒頗有體, 冀其長遠, 豈意夭折至此. 惻痛惻痛.
(어느해 섣달 25일에 보낸 서간으로) 둘째 아들의 둘째 아이가 저승으로 떠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객지에서의 상심과 애통을 어떻게 감내하고 계신지요. 이 아이는 퍽 풍채가 있어서 큰 인물이 되리라 기대했는데 이렇게 요절할 줄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슬프고 애통합니다.
(번역: 김규선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