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대시인. 본관은 덕수이며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 이외에 택풍당(澤風堂), 남궁외사(南宮外史), 택구거사(澤癯居士) 등을 썼다.
광해군때 문과에 급제했으나 폐모론이 일자 경기도 양평으로 낙향했다. 인조반정 뒤 이조좌랑에서 시작해 부제학과 대제학, 예조, 이조 참판을 역임했다.
이정구, 장유, 신흠과 함께 조선 4대 문장가로 손꼽히며 《선조실록(宣祖實錄)》의 수정을 맡았다.
글씨가 진중하고 단정해 전하는 행서를 보며 해서풍이 느껴진다.
[자료 1]
서간: 22x23cm(서울옥션 제공)
해제(부분)
[□兄前 上謝狀, □□奉 侍史]
歲晏南望, 杳然如夢, 忽奉來書, 仍審家况康寧, 慰開倍常. 弟老病當退, 以時不暇, 適被譴旨. 從此脫身.
[□형께 답을 올림, □□참봉께]
한 해가 저무는 때 남쪽을 바라보면 꿈처럼 아득한 즈음에 갑자기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가내 두루 평안하다는 소식까지 들으니 여느 때보다도 갑절이나 위안이 됩니다. 저는 늙고 병들어 마땅히 은퇴해야 하지만 미처 겨를이 없었는데, 마침 견책의 성지(聖旨)를 받았으니 이제 관직을 벗어나는 일이...
(번역: 김규선 선문대교수)2011년 영국박물관 소장 조선불화 등 2점의 회화를 보존처리한데 이어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