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곡 김육(潛谷 金堉 1580-1658)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대동법의 시행으로 이름났다. 청풍이 본관이며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이외에 회정당(晦靜堂)을 썼다.
1605년(26살)에 사마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유소(儒疏)건으로 문과 응시자격이 박탈당해 경기도 가평 잠곡에 은거했다.
인조반정이후 장원 급제하였고 이후 1638년 충청도 관찰사에 올랐다. 이 무렵 대동법 시행을 건의하면서 훗날 효종때 영의정이 되어 대동법 확장시행에 노력했다.
글씨는 전하는 간찰이 있다.
[자료 1]
서간: 23x25cm(서울옥션 제공)
해제)
向慕之極, 忽承情翰. 兼受惠送節扇, 最先於方乏之際, 感荷千萬. 但聞有速歸之意, 無乃薄淮陽耶.
더없이 그립던 참에 보내주신 편지를 갑자기 받고, 마침 꼭 필요로 하는 즈음에 접이부채까지 보내주셨으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만 속히 돌아가야 한다는 듯한 말씀을 들으니, 혹시 회양(淮陽)을 박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십니까?
(번역: 김규선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