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풍천으로 자는 무숙(茂淑), 호는 소암(疎庵)이다.
광해군 때 별시문과에 응시하며 지은 대책문(對策文)이 왕의 심기를 거슬려 급제 취소됐으나 이항복의 노력으로 다시 급제된 전력이 있다.
인조반정 이후에 예문관 검열, 홍문관 정자 등을 거쳐 지평에 이르렀다. 어려서부터 기억력이 뛰어났고 시와 문장을 잘 지은 것으로 유명했다. 『소암집』이 있다.
글씨를 잘 쓴 것으로 전하나 필적은 많지 않다.
[자료 1]
서간: 17x27cm(서울옥션 제공, 오세창 구장품)
해제(부분)
陋哉. 其不聞乎古人之風乎. 當天寶之亂, 兩京失守, 玄宗流揜於成都. 新羅使者, 猶冒險入蜀, 竟致天貢獻而歸, 不亦善乎.
누추하구나, 옛 사람의 기풍을 듣지 못한 것이여! 천보(天寶)의 난(안녹산의 난) 때 두 서울을 잃게 되자 현종(玄宗)이 성도로 흘러들어가 있었는데, 신라(新羅) 사신이 험난을 무릅쓰고 촉(蜀)으로 들어가 결국 천자에게 공물을 바치고 돌아왔으니, 또한 훌륭하지 않은가!
(번역: 김규선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