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이나 안동 임하에서 출생했다.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峯)이며 도산서원에서 이황에 배워 문인이 됐다. 강직한 처신으로 유명하고 지방관 때는 선정을 베풀었다. 1590년 일본통신사행의 부사로 임명돼 일본의 정세를 판단한 뒤 침략 의사가 없음을 보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장 곽재우를 도와 의병활동을 벌였다.
글씨는 초서의 필의에 행서의 풍격을 더한 것으로 비수, 장단 등의 대비가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자료 1]
서간: 23.5x34cm 서울옥션 제공(오세창 구장품)
數日中 聯承/惠札 就審/政履萬重 仰慰不可言/ 琴姪意外來到 喜可知/ 但鄙人 自月初患氣瘧/ 日日臥吟 身不離牀 渠來/隔晨 尙未得見面 可恨(...)
며칠 동안에 연이은 편지를 받고 관직에 있으며 지내시는 몸이 안녕하시다 하니 그 반가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조카 금(琴)이 뜻밖에 찾아와서 얼마나 기뻤을 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월초부터 학질을 앓아 날마다 신음하느라 병석을 떠나지 못하고 있어서, 그가 어제 새벽에 왔는데도 아직까지 보지 못하고 있으니 참 안타깝습니다.(...)(김규선 선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