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북인의 영수. 본관은 한산이며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 또는 종남수옹(終南睡翁)을 썼다. 영의정 시절에는 국초부터 명나라에 요청한 종계변무(宗系辨誣, 명에 대해 태조 이성계 종계의 잘못된 기록을 수정해달라고 주창한 일)를 일단락지은 공으로 광국(光國) 공신에 책록됐다.
글씨는 6살 때 글씨를 잘 써 신동이란 말을 들었으며 명종에게 불려가 글씨를 쓰기도 했다. 조맹부의 송설체를 잘 썼으며 특히 초서와 대자로 유명했다.
[자료 1]
시고: 41x52cm 서울옥션 제공
당나라 시인 전기(錢起 722-780)의 「강행무제(江行無題)」 100수 중 제9수의 내용이다.
(해제)
斗轉月未落 舟生夜已深
有村知不遠 風便數聲砧
북두칠성은 돌고 달은 아직 지지 않았는데
배는 떠가고 밤은 깊어가네
마을이 멀지 않음은
바람 편에 다듬이 소리 들렸음이라
此雖無款, 鵝溪相公書無疑. 以書法可論定耳. 洌上徐丙斗題.
이 글씨에는 비록 낙관이 없으나 이산해 상공의 글씨로 의심이 없다. 서법으로 논해 정할 뿐이다. 열상 서병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