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울산이며 자는 후지(厚之), 호는 하서 이외에 담재(澹齋)도 썼다. 전라도 장성 출생.
어려서부터 총명해 당시 전라도 관찰사였던 김안국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540년 31살 때 별시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은 교리를 지냈다.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와 성리학 연구에 매진했다. 문과 급제 이전에 성균관에서 퇴계 이황(1502-1571)과 함께 수학했다.
신흠(申欽 1566-1628)은 그의 글씨 재주는 ‘안진경과 유공권의 서법을 계승했다’고 말했는데 전하는 글씨 중 획이 두꺼운 점에서는 그와 같은 지적에 공감할 수 있다.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은 『연려실기술』에는 그의 글씨를 가리켜 ‘선생은 필법이 단정하고 엄밀하며 해서와 초서에서 각각 오묘한 경지에 이르렀다. 일찍이 그다지 힘을 들인 것도 아닌데 자연으로 얻은 취미가 있어서 겉으로는 곱고 예쁘며 안으로는 굳세고 힘차니 전서와 예서 같은 고자(古字)의 글씨체는 더욱 보통사람들이 잘하기 어려운 분야이다’라고 했다.
[자료 1]
자작시: 1555년 30x24.5cm 서울옥션 제공
후배인 기봉 백광홍(岐峰 白光弘 1522-1556)이 이 해(1555년) 평안도 평사로 벼슬살이 갈 때 써준 자작시로 『하서집(河書集)』에도 실려 있다.
(해제)
奉謝白大裕行軒
曾聞天下白, 記/室塞雲端. 幾/歲淸塵隔, 中秋/皓景闌. 君忙馳/驛路, 我病臥湖/干. 吹帽臨佳節,/余冠爲子彈.
乙卯 中元後十有三日, 河西 病稿
행차중인 백대유에게
‘천하에 백대유’란 말을 들었는데
기실(記室, 백대유 지칭)이 구름 끝에 막혀있네
몇 해를 속세와 단절했던가
중추의 달 밝은 풍경이 끝나가네
그대는 역로(驛路)에서 바쁜데
나는 강호에 누워있네
취모(吹帽)의 좋은 계절 맞았으니
나의 관(冠)을 그대가 털어주게나
(단어 풀이)
취모(吹帽)의 계절: 음력 9월9일의 다른 말. 중양절(重陽節). 진(晉) 나라 때 환온(桓溫)이 9월 9일에 용산(龍山)에서 베푼 잔치에 맹가(孟嘉)가 참여하였는데, 때 마침 바람이 불어와 맹가의 모자를 날려 버렸으나 맹가는 그것도 모르고 풍류를 즐겼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김규선)
[자료 2]
자작 제화시: <연방동년일시조사계회도> 중, 1542년 101.2x60.6cm 국립광주박물관
(해제)
衿佩當年一榜歡 科名先後十年間
朝端共路非新契 都下分司名末班
隨處未開眞面目 偸閑須向好江山
相從乍脫塵啣束 莫使樽前笑語闌
진사에 동방(同榜)한 당년의 선비들이
십년을 전후하여 대과에 올랐구려.
벼슬길 함께 가니 새로 맺은 벗이 아니오
맡는 구실 다르지만 모두 다 말단일래.
만나는 자리마다 참된 면목 못 얻어서
한가한 틈을 타서 좋은 강산 찾아 가네
진세의 속박을 잠시나마 벗어나니
술 마시며 웃음 웃고 이야기나 실컷 하세. (『한국회화대관』 신호열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