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전통예술세계를 서화(書畵)라고 부릅니다. 서예는 이렇듯 조선 시대에 회화 다음으로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주요 서예가들에 대해 인물 행적, 글씨 특징, 원본 자료 등을 소개해 미지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조선시대 서예 세계를 새롭게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이 글에 관련된 각종 해설, 해제, 자료 제공은 단옥션 김영복 대표, 선문대학교 김규선 교수,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 부장, 미술사가 황정수씨 그리고 서울 옥션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국역 근역서화징』(한국미술연구소기획, 시공사간행),『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간행)을 기본 참고자료로 삼았음을 밝힙니다.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 자는 경호(景浩)이며 호는 퇴계 이외에 지산(芝山), 청량산인(淸凉山人), 퇴도(退陶), 도수(陶叟), 계로(溪老) 등을 썼다.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34살 때 문과에 급제해 관로 나갔으나 중종 말년의 조정의 어지러움을 보고 산림에 은돼를 결심 1546년 낙동강상류 토계(兎溪)에 암자를 만들고 독서 생활에 들어가며 호를 퇴계로 지어정했다.
글씨는 조선의 송설체 위에 왕희지 법첩, 김생 필적 등을 폭넓게 수련해 50대 이후에 퇴필(退筆)이라는 독자적인 서체를 완성했다. 퇴필은 이동국씨에 따르면 자체의 외형이 둥글납작하게 보이는데 60대 이후에는 좀 더 옆으로 펼쳐지는 듯한 필세(筆勢)에 살집을 덜어내고 골기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 이 서간은 그의 나이 37살 때 쓴 것이다.
[자료 1]
서간: 1537년 24x20cm, 서울옥션 제공
(부분 해제)
阿慶欲令讀孟子大文, 其冊使阿淳搜覓不得, 未知何人借去乎, 後來人通報, 亦可
丁卯八月卄六日父
아경(阿慶)에게 『맹자』를 읽히고자 해 아순(阿淳)에게 그 책을 찾아보게 했는데 찾지 못했으니 누가 빌려간 것인지 모르겠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통보해도 된다.
정유년 8월26일 아비.
[자료 2]
자작시: 22.5x13.5cm 서울옥션 제공
자작시: 22.5x13.5cm 서울옥션 제공
(해제)
病枕襄陽客舍寒 幸蒙鳩杖與開顔 只今歸臥猶多恨 不作高亭一縱觀
병들어 누운 양양의 객관은 찬데, 다행히 지팡이 있어 함께 활짝 웃는다
지금 고향에 돌아와 오히려 섭섭한 것은
높은 정자에서 한번 마음껏 구경하지 못함이네
(『퇴계선생문집속집』권2에 수록된 제목은 다음과 같다.
順興安上舍孝思老丈所居襄陽郡南蘆浦村. 臺亭勝絶. 今年春. 滉病臥郡館. 上舍爲枉問敍舊. 時年八十四矣. 緣病甚不得往謝而來. 媿恨良深. 近又寄書來. 囑和其亭詠中崔艮齋樂府十首. 滉素不解作詞曲. 況曾有亭詠近體三首浼呈. 今何更强作耶. 病中聊吟三絶見懷. 以少答上舍辱枉勤索之意云爾.
순흥안씨집안의 안효사 상사(생원)은 양양군 남노포촌에 살고 있는데 정자의 경치가 뛰어났다. 금년 봄 내가 군의 객관에 병들어 누워있자 생원이 일부러 문병을 왔는데 그때 나이 84이었다. 병으로 가서 사례를 하지 못해 매우 부끄러웠는데 근래 다시 글을 보내와 정자중에 있는 최간재의 악부 10수에 화답하는 시를 청했다. 나는 본래 가사곡은 잘 모르지만 때마침 일찍이 정자를 읊은 근체시 3수가 있으니 지금 어찌 억지도 다시 지을 것인가. 병중에 시의 세 수를 떠올려 안 상사가 애써 시를 청하는 뜻에 답하고자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