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해석>
①日前下復 拜慰拜慰 伏問雪裏 ①일전하복 배위배위 복문설리 台體度萬重 憂患快瘳 태체도만중 우환쾌추 耶 伏溯且慮 ②記下見差於東 야 복소차려 ②기하견차어동 學罪人營下會査官 昨者發 학죄인영하회사관 작자발 到此處 早食欲發 雨勢如 도차처 조식욕발 우세여 此 前路泥濘 萬無作行之道 차 전로니녕 만무작행지도 ③爲主倅所挽 留坐衙中 甚 ③위주졸소만 류좌아중 심 菀甚菀 切欲進拜穩話 而多 울심울 절욕진배온화 이다 率貽弊 亦甚關心 ④玆報行 솔이폐 역심관심 ④자보행 期 回路第當入拜 而遲速姑 기 회로제당입배 이지속고 未可知耳 不備禮 미가지이 불비례 元月十四 記下 鄭夔和 원월십사 기하 정기화 拜手 배수 |
① 일전에 보내주신 답장을 받고 매우 위로가 되었습니다. 삼가 눈 속에 대감의 건강이 만중하시고, 우환은 나으셨는지요? 그립고 또 걱정이 됩니다. ②기하(記下)는 동학 죄인(東學罪人) 영하회사관(營下會査官)에 차임(差任)되어 어제 출발하여 여기에 도착했습니다. 일찍 밥을 먹고 출발하려고 했지만, 빗줄기가 이처럼 거세어 앞길이 진창이라 떠날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③주쉬(主倅)의 만류로 관아(官衙)에 머물려니 매우 울적하고 울적합니다. 찾아뵙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폐를 많이 끼칠듯하니, 그 또한 매우 마음이 쓰입니다. ④이에 행기(行期)를 알려드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반드시 찾아뵙겠습니다만, 늦을지 빠를지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예를 갖추지 못합니다. 정월 14일 기하(記下) 정기화(鄭夔和) 올림 |
<풀이>
모년 1월 14일 기하(記下) 정기화(鄭夔和)가 보낸 서간이다.
발신자는 1864년 당시에 지례(知禮) 현감으로 명사관(明査官)에 차임(差任)되었는데, 그 무렵 성주(星州) 대포(大浦)에 내려와 있던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에게 보낸 서찰로 추정된다. 피봉에 ‘성읍 과객(星邑 過客)’이라고 적었으니, 아마도 성주를 지나는 길에 쓴 듯하다.
동학 교주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는 1863년 11월 왕명을 받은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에게 제자 23명과 함께 경주(慶州)에서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되는 도중에 철종이 승하하여 1864년 정월에 대구감영으로 이송(移送)되었다.
경상감사 서헌순(徐憲淳)은 정월대보름 명절을 지나면 곧바로 신문(訊問)하려고 했으나, 여러 날 겨울비가 심하게 내려 20일부터 신문에 들어갔는데, 상주목사 조영화(趙永和), 지례현감 정기화(鄭夔和), 산청현감 이기재(李沂在) 등 3명을 명사관(明査官)으로 선임하였고, 네 차례에 걸친 심문 끝에 음력 3월 10일 사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효수(梟首)했다.
<용어 및 지명>
기하(記下) : 자기보다 신분이나 계급이 조금 높은 사람을 상대하여 자기를 낮추어 이르는 일인칭 대명사. 기하생(記下生).
주쉬(主倅) : 해당 고을의 원님, 수령.
성주(星州) 대포(大浦) : 2010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민속마을이다. 민속적 전통과 건축물을 잘 보존한 성산이씨 집성마을로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67번지 일원에 있다. 조선 세종조에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李友)가 처음 입향(入鄕)하여 개척한 마을로 현재는 그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성산이씨(星山李氏) 집성마을이다.
정기화(鄭夔和, 1798~?)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장일(章一)이다. 부친은 정홍사(鄭鴻師)이고 생부(生父)는 정홍진(鄭鴻晉)이다. 1834년 생원(生員) 식년(式年)에 2등으로 합격하였다.
이원조(李源祚, 1792(정조 16)∼1872(고종 8))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초명은 영조(永祚), 자는 주현(周賢), 호는 응와(凝窩). 형진(亨鎭)의 아들이며, 정언 규진(奎鎭)에게 입양되었다. 1809년(순조 9)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1837년(헌종 3) 정언으로서 기강이 문란하여져 사족(士族)들의 사치가 극도에 달하였으며, 이와는 달리 계속된 흉년으로 민중들의 간고(艱苦)가 형언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음을 들어 쇄신책을 실시할 것을 극간하였다. 1850년(철종 1) 경주부윤에 오르고, 1854년 대사간에 이어 공조판서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