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회화
  • 도자
  • 서예
  • 오늘의 그림 감상
  • art quiz exercise
타이틀
  • 단 위에 앉아있는 이 인물은 누구인가?
  • 214      



수염이 허연 어르신이 중심인물임이 분명하다. 그를 둘러싸고 네 명의 남자가 앉아 있는데 한 명은 거문고 같은 악기를 들고 있다. 얼굴에 보일락말락한 미소를 띠고 있는 이들 가운데 향로에서는 향이 은은히 피어오르고, 조용히 서 있는 시동들도 경건하고 조용하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에 한몫을 하고 있다. 

이들이 앉은 곳은 돌을 쌓아 올리고 야무지게 만든 네모난 터이며, 뒤에 자리잡은 이파리 무성한 커다란 나무도 존재감이 상당하다. 어떤 중요한 이야기의 한 장면임을 알리는 단과 나무는 무엇일까? 이 사람은 누구일까?








---
『장자(莊子)』에 공자가 살구나무가 심어진 행단에서 쉴 적에 제자들은 글을 읽고 공자는 금을 타며 노래했다는 내용이 있다. 공자의 일대기를 그린 <공자성적도>에도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가 벼슬을 구하지 않고 행단에서 금을 타며 제자들과 책을 펴냈다는 장면이 들어 있다. 행단이라는 장소는 공자가 세상에 가르침을 베푸는 아주 중요한 장소인 것이다. 이 고사를 '행단고슬(杏檀鼓瑟)'이라고 부른다. 그림의 맨 위 왼쪽에 '행단고슬, 정선'이라고 명시했다. 

정답은 공자.
겸재 정선 <행단고슬도> 비단에 채색, 29.4x23.3cm, 왜관수도원(성오틸리엔수도원에서 영구임대)

실제로 이렇게 생긴 장소였는지는 모르나 시간이 흘러 송(宋)나라 때 공자의 묘 앞에 단을 만들고 그 주위에 살구나무를 심어 행단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금(金)나라 때는 행단(杏檀)이란 글자를 쓴 비석을 그곳에 세웠다고도 한다. “행단의 붉은 살구꽃”과 같은 시구도 있고 공자성적도에 살구나무를 그린 예가 많아 중국에서는 행단의 나무를 살구나무로 본 것이 확실한데, 조선에서는 같은 한자[杏]를 쓰는 은행나무로 여긴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겸재 정선이 그린 이 그림에서도 살구나무를 표현했다기보다는 은행나무에 가까워보인다. 또, 공자가 아닌 제자가 금을 켜는 것으로 그려졌다.

이 그림이 실린 화첩은 유명한 왜관수도원의 《겸재정선화첩》으로, 80여 년의 세월 동안 독일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있었다. 노르베르트 베버(1870~1956) 초대 대원장이 1925년 한국 선교지 시찰 중에 겸재 정선의 그림 21점을 구입해 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버는 그때 금강산 유람도 했어서 1927년 독일에서 『한국의 금강산에서』라는 제목으로 여행기를 발간했고, 쾰른대학교에 유학하던 중에 도서관에서 이 책 속에 겸재 그림 도판을 발견한 전 이화여대 교수 유준영 선생이 1975년 3월 오틸리엔 선교박물관을 찾아가 화첩을 실견했다. 귀국해 화첩의 존재를 알리자 화첩은 오히려 꽁꽁 숨겨지게 된다. 한국의 책가도(冊架圖)를 연구한 케이 E. 블랙 등이 「상트 오틸리엔 소장 정선의 진경산수화」라는 제목의 논문을 『오리엔탈 아트』(1999)에 발표하고 점점 더 관심이 집중되자, 드디어 2005년 가을, 오틸리엔 측이 ”왜관수도원이 화첩의 소장을 원하고, 화첩의 적절한 전시공간을 마련한다면, 이 화첩을 ‘영구 임대’ 형식으로 반환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고, 2009년 10월, 국립중앙박물관의 겸재 정선 특별전에서 일반에 공개됐다. 현재 영구임대 형식으로 완전히 돌아왔지만 완전 소장은 아니고 문화재로 지정되지도 못했다. 2007년 왜관수도원 본관에 화재가 발생했으나 무사했고, 다행히 화첩은 안전했고, 2010년 이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 보관하고 있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09:35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