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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도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 가진 이 미적 범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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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너의 휘몰아치는 바다 그림 앞에 섰을 때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 외에도 “압도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느낌은 조용한 공간에서 마크 로스코의 대형 색면 추상을 볼 때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 회화적이거나 마냥 아름다운 것과는 대조적인 이 감정은 경외심, 어쩌면 약간의 공포를 포함한 본능적인 감각인데, 이를 미학에서는 ★라고 부른다.


터너 <눈폭풍Snow Storm - Steam-Boat off a Harbour’s Mouth> 1842?, 캔버스에 유채, 91.4x121.9cm, 테이트


18세기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면서 미학적인 개념을 가리키게 되었고 낭만주의 문학이나 미술 작품을 설명할 때 많이 쓰이기도 했다.

위의 ★에 들어갈 용어, 이 미학 개념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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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숭고 또는 숭고함. Sublime.

숭고는 낭만주의와 더불어 시나 예술에 가까워진 침묵, 우울, 공포 등 매력적이면서도 겁을 주는 것들과 함께 미학 속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후 미와 함께 18세기의 미적, 예술적 반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블레이크, 워즈워드, 키이츠 등의 낭만주의 시인이 숭고를 중요한 미학으로 여겼듯이 낭만주의 풍경화가들도 그러했는데, 분명한 전경과 산만한 후경의 대비를 이용한다든가 해서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알 수 없는 힘 앞에 인간 자신은 무력하고 고독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려 했다. 그들에게 숭고는 특정 종류의 자연 경관 혹은 자연 경관을 보는 특정 방식 혹은 심지어 자연 그 자체를 의미했다.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의 긴장을 숭고의 근원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존 마틴 <신의 분노의 날The Great Day of His Wrath> 1851~53, 캔버스에 유채,  303.2x196.5cm, 테이트


숭고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대상 앞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무력감 비슷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무력감이 다인 것도 아니다. 몸뚱이 하나를 가진 물리적 존재인 인간이 느낄 수 밖에 없는 고통이나 공포에 더해,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인간의 정신의 위대함이 부각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숭고는 부정적인 감정과 이를 극복하는 긍정적 감정의 이중성을 가진다.

숭고라는 용어 자체는 고대 수사학에서 구체화된 개념이고 그리스 말과 라틴어에서 숭고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 높은 곳 즉 언덕, 꼭대기를 의미한다. 거기에서 위엄, 위풍당당함, 고고함, 장엄함 등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 

숭고한 양식에 대한 가장 최초의 유명한 글은 체칠리우스의 것인데 전해지지 않아서, 숭고에 대한 가장 오랜 문헌은 흔히 그리스 철학자 롱기누스(213?-273)의 저술로 잘못 알려진 AD 1세기 경의 논문 「숭고에 관하여On the Sublime」로, 체칠리우스의 숭고론에 대한 응수로 쓰여진 것이다. 

* 롱기누스의 논문 영어 버전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덕에 인터넷에서 무료로 읽을 수 있다. 
 
숭고를 본격적으로 다룬 주요문헌은 1756년 영국 작가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와 미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Philosophical Enquiry into the Origin of Our Ideas of the Sublime and beautiful」 이다. 여기서는 동시대 미학 탐구에서 있었던 본질적인 접근보다는 다소 인간적인, 쾌락이나 고통 같은 일반적이고 일상적 현상을 미와 숭고의 기초로 삼았다. 쾌락와 고통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으로 누구나 그 경험이 비슷하다. 미가 적극적 쾌락이라면 숭고는 고통의 제거에서 오는 환희(delight)와 결부된다. 미는 작고 부드러운 대상, 사랑과 유사한 열정을 일으키는 것이고, 숭고는 거대하고 고통과 위협과 관련된 공포의 관념을 야기하는 것이 원천이라고도 했다. 

2천년 이상 지속되던 '미'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해 18세기를 주도하던 숭고의 미학은 현대예술의 사상적 진원에 자리하게 된다.

현대 철학자들은 현대의 전위적인 예술이 바로 숭고의 예술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마르셀 뒤샹, 뒤뷔페, 바넷 뉴만 등의 현대미술은 더이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숭고함을 표현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즐거움을 주는 데에 그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에게 예술작품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뒤흔들고 혼란스럽게 하는 데 목적을 둔다. 현대미술이야말로 숭고의 미술이라는 것.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2.02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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